주일예배 설교

누가복음 강해 3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2025-02-02 08:46:35
김상윤
조회수   24

20250202(주일) 누가복음 강해 3 

눅 1:26-38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서론) P) 오늘 본문은 일명 “수태고지(The Annunciation)”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등장하는 두 번째 이야기이지요. 오늘 수태고지 이야기는 첫 번째 가브리엘의 등장과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요한의 탄생 예고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데 두 번째는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시골 깡촌을 배경으로 합니다. 첫 번째 사건은 남성 제사장 사가랴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10대 소녀 마리아가 주인공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에서 당사자들은 천사를 만나고 놀라며, 처음에는 천사의 말을 믿기 어려워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천사의 말에 대해 사가랴의 불신이 부각되는데 반하여, 두 번째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결국 천사의 말을 수용하고 순종하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교를 염두에 두고서 오늘 본문을 함께 묵상해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역사는, 자주, 사람들의 관심 주변부에서 시작됩니다. P) 26-27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하나님께서는 자주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주변부에서 당신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실 구원자를 보내실 때에 당시 로마 제국의 수도나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가 아니라 P) 로마 제국의 변방, 지중해 동쪽 레반트(Levant) 지역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서깊은 유대 땅 예루살렘이나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가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이방의 땅으로 여겨졌던 P) 갈릴리 지방의 한 마을을 고르셨습니다. 갈릴리에는 헤롯 안디바가 건설한 디베랴같은 상업의 중심지도 있었고, 가다라, 거라사, 가버나움처럼 어업이나 농업, 교역이 발달한 도시들도 있었지만, 갈릴리 지역에서도 작고 가난한 보잘것없는 산골 마을, 나사렛이 오늘 메시야 수태고지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했을 때에 나다나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P)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나다나엘의 말은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 줍니다. 사실 나사렛은 구약 성경에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갈릴리 도시 45개를 언급한 요세푸스나, 갈릴리 63개 도시 이름이  등장하는 탈무드의 목록에도 나사렛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보잘것없는 마을을 메시야 등장의 첫 무대로 삼으신 것입니다.

역사의 변화는 종종 주변부에서 시작됩니다. P)16세기 종교개혁은 당시 로마 가톨릭 세력의 중심인 이탈리아,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 신성로마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P)신성로마제국에서도 유서깊은 도시들이 아니라 북동부 작센 주의 작은 대학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종교개혁의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개혁교회가 시작된 곳도 취리히나 베른 같은 스위스 연맹의 도시 국가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비슷합니다. 한 왕조가 끝나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설 때에 주변부에 수도가 세워졌습니다. 고려를 창건한 왕건은 그 당시까지 후삼국시대의 변방이었던 개성에 수도를 정했습니다. 고려 시대가 끝날 즈음에 함경도 변방의 무장이었던 이성계는 권력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사대부 세력과 결합해서 권문세족 기득권 세력을 누르고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새로운 조선 왕조를 건국했습니다. 주변부에서 역사의 변화가 시작될 때에 그 중요성을 자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변부에서 역사는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발견합니다. P) 안양 평촌에서 시작한 뉴라이프교회가 의왕 왕곡동에 정착해서 20년을 보내고 이제 수원 북부의 이목동으로 이사를 갑니다. 이목동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목동에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실까요? 그것은 부분적으로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 무엇일까요?

 

둘째로,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누구에게 보내셨습니까?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마리아였습니다. 28-30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마리아는 갑자기 나타난 천사의 인사에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는 특별한 말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특별한 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P) “은혜를 받은 자여(케카리토메네 κεχαριτωμένη)”라는 말은 5세기에 교부 히에로니무스가 라틴어 성경을 번역하면서 P)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gratia plena)라고 풀이해서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표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마리아는 은총을 가득 받았으므로 은총의 보고(寶庫)로 간주되고, 이 표현을 성모무염시태(immaculata conceptio) 교리의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창 3:15)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몸에서 나실 것은 모든 기독교 교파 공통의 고백이지만, 이 성모무염시태교리는 동방정교회나 개신교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라는 천사의 호칭은, 단지 역사적인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P)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위해 선택하신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뭔가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두 번에 걸쳐서 마리아가 은혜를 받은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P)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에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인정받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호불호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인가입니다. 사람들이 뭐라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선택받고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P)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사실 하나님이 구원 역사를 위해 특별한 목적으로 누군가를 선택하실 때에 사용됩니다. 우물을 여럿 파서 그랄 땅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브엘세바로 올라간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창 26:24). 집을 떠나 밧단아람 외삼촌 집으로 가는 길에 벧엘에서 꿈을 꾸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P)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애굽에서 고통받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사명을 위해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P)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고 하나님 역사의 동역자로 사명을 맡기십니다. 

오늘 은총을 입은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맡기십니까? 31-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다윗 왕조를 회복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명입니까? 적어도 예수님 당시에는 여인들에게 있어서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사명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천사의 예고는 마리아에게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현재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결혼 최소 연령은 여자는 12세, 남자는 14세였는데, 어린 나이에 딸이 결혼하게 되면 부친은 딸의 순결을 보증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12-3세가 결혼 적령기였습니다. 보통 정혼하고 열두 달의 정혼 기간 동안 순결을 지키다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마리아는 10대 초중반의 어린 소녀였을 것입니다. 성경험이 없는 정혼한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정혼한 마리아가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간통의 혐의로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의 반응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계획은 멋지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종종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예상과 기대를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주의 몸된 교회가 되게 하신 것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를 뉴라이프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생명을 누리고 전하는 사명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거룩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음을 사람들이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까? 저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까? 사명을 감당하려면, 먼저 우리 마음에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열정이 넘쳐야 하는데, 과연 돌같이 굳은 우리 마음이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 공동체에 부흥과 갱신이 가능할까? 지난 3년 우리 교회가 걸어온 걸음을 돌아보면, 감사한 일이 참 많지만, 여전히 안개처럼 불확실성 속에서 걸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랜 채무의 사슬을 벗어버렸지만, 빚을 청산한 기쁨은 잠시이고, 여전히 넘어야 할 산같고 건너야 할 늪 같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돌아가다 못해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주의 몸된 교회로서 우리가 예수님 따라 서로 협력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는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뭐라 대답하실까요?

 

셋째로,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35, 3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어찌 이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라는 우리의 질문에 주님의 대답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일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덮으시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사 7:14) 기적이 일어납니다. P)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시면 어떨까요? P)브살렐처럼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사명을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출 31:3). P)기드온처럼 원래 비겁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큰 용사로 떨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삿 6:12). P)예레미야처럼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외에 달리 어찌할 수 없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렘 20:9). P)세례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묵묵히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눅 3:4).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시면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은 과거 성령 충만하셨을 때에 어떠셨습니까? 돌이켜보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고 믿음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어깨가 으쓱하면 안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감화 감동하셔서 그렇게 아름답고 귀한 역사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성령충만한 상태를 소망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37-38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대답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실 때에 순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에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결론) 사랑받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종종 주변부에서 시작됨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의 10대 소녀, 요셉의 정혼녀 마리아를 통해서 당신의 구원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종으로 자신을 주님의 말씀에 맡기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말씀의 종으로 우리 자신을 주께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함으로 하나님 역사에 동참하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을 부르며 성찬예식으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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