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마음, 행동, 열매
2025-06-08 08:20:57
김상윤
조회수   30

 

20250608(성령강림주일) 

갈 5:16-26 마음, 행동, 열매

 

서론) P) 오늘은 성령강림주일(Pentecost)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서 신약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생일이지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신 지 10일이 지났습니다. 120여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 늘 모이던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던 제자들에게 마침내 약속하신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P) 오순절은 원래 구약의 절기인 칠칠절에서 유래했습니다. 유월절 다음 주일인 초실절로부터 7주를 세어 보리 수확이 끝나고 이제 밀 추수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은 날도 오순절이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이스라엘 민족이 시작되는 날이 오순절이지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부활절로부터 7주가 지나, 종말의 새로운 시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신약 교회가 시작되는 날이 오순절, 즉 성령강림절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담대해졌습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해졌습니다.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언어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행 2:36).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회개했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회개하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선물로 임하셨습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에게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성령강림절은 교회가 어떠한 공동체인가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의 첫 장면이었습니다. 교회는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신자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동체였습니다.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삶의 이야기는 어떠한 것인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서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첫째로, 신자의 마음에 작용하는 힘이 있습니다. 육체의 욕망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16-18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신자의 마음에는 경쟁하는 두 힘이 있습니다. 우선 육체(사르크스)의 욕심, 육체의 욕망입니다. 자신을 위해 뭔가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자기중심적 욕망이지요. 이 힘은 우리 옛 자아의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굉장히 힘이 세게 느껴집니다. 우리 마음에서 역사하는 또 한 가지 힘이 있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셔들인 사람들입니다. 마치 결혼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처럼 신자는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육체의 욕심에 비하면 힘이 약하게 느껴집니다. 성령께서는 인격적이시니까요. 그래서 신자라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보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종종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상호 모순됩니다. 서로 거스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손해를 끼쳤다고, 해악을 끼쳤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떠한 육체의 욕심을 갖게 됩니까?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욕해주고 싶습니다. 앙갚음을 하고 싶습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앙갚음은 나의 것, 내가 친히 갚으리라 하셔도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셨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고려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기분 나쁘니까 내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무시하게 됩니다. 내가 너를 용서한 것처럼 너도 그 사람을 용서해라 해도 그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성령님의 감동을 소멸하게 됩니다. 더 이상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 시점에 이르고, 우리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상태가 됩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양심에 화인을 맞아(딤전 4:2) 마음이 굳어지고 더이상 생명과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이러면 정말 큰일이지요.

사실 인간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다툼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바로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두 힘의 갈등입니다. 자아의 욕망을 따를 것이냐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것이냐를 두고 신자의 영혼은 갈등을 겪습니다.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신자의 마음에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마음에 주십니다(고후 7:10). 그래야 회개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기혼자의 결혼 생활의 행복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배우자를 행복하게 할 때에 자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불행하다고 느끼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기혼자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뜻을 따를 때에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 불순종하며 자신의 육신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동안은 늘 불편한 양심으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신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 제대로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십시오. 자아와 성령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지 마시고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둘째, 육체를 따라 행할 때에 육체의 일을 이루게 됩니다. 19-21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P)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를 따라 행할 때에 나타나는 육체의 일을 최소한 열 다섯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와 보다 쉽게 연관될 수 있는 육체의 일들에 주목해 보기를 원합니다.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 갈라디아 교회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이방인들도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신학적 이슈가 있었지만, 그러한 신학적 이슈를 둘러싸고 교회 내에 파당이 생기고 분쟁과 분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적어도 세네 번의 목회 편지를 써 보낸 고린도교회도 파당과 분쟁의 문제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에도 여성 지도자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습니다. 그 이전에 모든 교회의 모범이 되었던 예루살렘 교회에서조차도 히브리파와 헬라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요.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교회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은 신자들이 육체의 욕심을 따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이런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경하게 말씀합니다(21절). 예수님을 믿는데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면 큰 일 아닙니까? 

우리는 흔히 갈등과 분열이 생길 때에 어떤 사람이 잘못해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P)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 6:41-42). 영적으로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바른 길은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바르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문제적 상황은 늘 있을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내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육체의 욕심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느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느냐가 우리 주님이 보실 때에 진짜 문제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 사도 바울이 언급한 이러한 육체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할 때에 이러한 육체의 일들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다투고 있습니까? 시기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에게 분내고 있습니까? 분쟁을 조장하고 있습니까? 공동체가 분열되고 있습니까? 끼리끼리만 모이고 있습니까? 질투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도 있고 앞으로 벌어질 일도 있습니다. 어떠한 육체의 욕심이 육체의 일을 행하도록 우리를 움직여 갑니까? 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온전히 성화되지 못한 우리는 헛된 영광, 사람의 영광, 나의 영광을 추구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판단하고 훈수두고 지적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그냥 못 넘어갑니다.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면 그것이 공동체의 갈등이 됩니다. 신자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예를 위해 때로는 기꺼이 오해와 모욕도 감내해야 합니다. 질투는 자신의 당연한 몫을 빼앗길까봐 염려하는 마음입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공동체를 분열케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주요한 원인이 됩니다. 시기 질투가 우리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 때에 먼저 하나님께 시기 질투하는 우리 마음을 정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육체의 욕심을 거부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에 육체의 일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육신에서 져서 육신대로 살지 마십시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며 사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롬 8:12-13). 

 

셋째로, 성령님을 따라 행할 때에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22-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육체의 욕심은 육신의 일을 이루는데 비해, 성령을 따라 행할 때에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은 육체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성령님의 지배를 받을 때에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P)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할 때에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에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가 우리를 통해 나타납니다. 사랑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실 때에 우리 영혼은 하나님 사랑으로 넘쳐나고 이러한 특징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지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흘러갈 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실 때에 환경과 상관없이 감사함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걸음을 걷게 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화가 우리 마음을 채우게 됩니다. 성령 충만할 때에 우리는 타인을 용납하며 오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에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히 대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선대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지배하실 때에 우리는 신실하며 온유하며 절제하는 성품을 나타내게 됩니다. 이 아홉가지 열매는 모두 성령께서 우리 영혼 안에 형성하는 덕목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24절).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도록 구원받았습니다(롬 6:11). 육체의 욕망대로 살지 말고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십시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사십시오.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따라 행하십시오. 매 순간 성령님께 구하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P) 우리 안에 있는 두 힘을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육체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P) 육체대로 살면 육체의 일을 이룰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은 육신의 일에 자신을 드리지 마십시오. P)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 이끌려 살아가십시오. 성령님을 의지하여 살아감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P)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서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새 생명, 새 삶을 누리고 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교우들 되시기를,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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