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설교
20250907(주일) 누가복음 강해 18
눅 5:17-26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서론) 사람은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갑니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친구들과 우정 속에 청년이 되고, 가정을 이루어 사랑하며 어른이 되어 가고, 공동체의 연대 속에서 폭풍 같은 세상을 헤쳐 나갑니다.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는 언제나 아름답고 흐뭇합니다. P) 최근에 온라인으로 개봉한 한 로맨스 코메디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 여고생의 짝사랑의 고백이 마침내 결실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그 고백을 도와주는 장면들이 웃음 요소로 큰 작용을 합니다. 그 친구들은 사랑하는 친구의 고백이 결실할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애를 쓰는데 그 모습이 흐뭇한 미소를 자아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치유의 기적 이야기에는 독특한 점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의 기적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서에는 타인의 믿음으로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 사례들이 나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의 귀신들린 딸의 치유를 구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모친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고쳐주셨습니다(마 15:28). 귀신들려 말 못하는 아이의 아버지가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절히 예수님께 간청하여 귀 먹고 말 못하는 아이가 고침을 받기도 했습니다(막 9:24). 백부장의 하인도 예수님께 칭찬받은 백부장의 믿음으로 병고침을 받았습니다(마 8:13). 이 중풍병자의 경우는 치유를 가능케하는 믿음이 좀더 드라마틱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적어도 네 명의 친구들이 우여곡절 끝에 이 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다 놓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한 아름다운 믿음의 연대와 협력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 갈등을 유발하는 등장 인물들도 있습니다. 바로 유대 출신의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 예수의 놀라운 사역 소식을 듣고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관찰하여 그가 참 선지자인지 검증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직접 예수님께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 예수님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그런 장면들을 여럿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는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고,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모함하여 넘기는데까지 여론을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소위 네 친구들에 초점을 맞추고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믿음을 보셨나요? 그 믿음으로 어떤 기적을 이루시나요?
본론) 첫째로, 주님은 함께 장벽을 극복하는 믿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사역하실 때에 치유의 능력이 주님께 나타났습니다. 아마 설교를 들을 때에 사람들 속에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행하는 기적과 가르침의 사역을 지켜보고 유대교의 전통에 부합하는지 조사하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한국 교회 성장기인 70-80년대에 교단에 상관없이 부흥회 때에 치유의 역사들이 나타나고 치유 집회가 유행했던 상황도 이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특히 오순절 교단이 급속히 성장했지요. 그 때에 주류 장로교단에서 오순절 교단에 대해 교리적 잣대로 신학적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삼박자 구원이나, 은사와 축복에 대한 강조에 우려를 표했고, 방언을 강조한 나머지 방언을 해야 성령을 받은 것이라는 신학적 주장이 비성경적이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장로교회가 주류인 한국교회의 신학적 지적을 오순절 교단에서 잘 수용하여 성령 사역에 대해 처음보다 더 균형잡힌 견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류 교단들에서, 특히 통합측 교단 일부 교회들에서는 오순절 교단의 성령에 대한 강조와 은사에 대한 입장을 긍정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20세기 한국교회에서는 예수님 당시보다 어쩌면 더 긍정적인 상황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모이신 곳에 치유의 기적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가버나움에 퍼졌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한 중풍병자가 있었는데 좋은 친구들이 그를 돌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그들은 아픈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려가 치유를 받게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신다는 장소로 갔습니다(18절). 어떤 학자들은 그 집이 베드로의 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있어서 도저히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들어갈 길을 얻지 못”했습니다(19절). 장벽 앞에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P)그들은 계단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기와를 벗겨 내고 흙과 나뭇가지로 된 지붕을 뜯어내어 침상 채로 달아내렸습니다. P) 상상을 해 보십시오. 아래에서 얼마나 큰 혼란이 벌어졌을지를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주거침입죄에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는 일을 벌인 것입니다. 어쩌면 지붕을 뜯는 과정에서 아래에 있던 사람 중에 여럿이 먼지투성이가 되었을 것이고 다친 사람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예배방해죄에 해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데 누군가 옆창문을 뜯고 환자를 들여보낸다면 그런 행동을 인정해주거나 칭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달랐습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아마 집 주인은 화가 단단히 났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라고 분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달랐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의 무모한 행동을 “믿음”이라 인정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 주님은 무엇을 믿음이라고 보십니까?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 병고침을 받을 결심을 했습니다. 함께 아픈 친구를 침상에 메고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장벽에 부딪혔을 때 포기하지 않고 함께 방법을 찾았습니다. 상식을 뛰어넘은 창조적인 방법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개의치 않았습니다. 지붕을 뜯은 일에 대해 나중에 사과하고 보상할 각오를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친구들의 마음과 노력과 수고를 우리 주님은 믿음으로 보셨습니다. 주님이 보신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P) 우선 중풍병자를 낫게 한 믿음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P)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주님께 나아가야 해결책이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갈 때에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은 이런 믿음입니다. P)또한 주님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찾으십니다. 주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4-17). 중풍병자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은 주변에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가기 위해 행동한 것은 네 명의 친구들입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행동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갈 5:6). 중풍병자를 향한 이들의 절실한 사랑은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행동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랑의 행동을 믿음이라 인정하셨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시는 교우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고 뉴라이프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으시기에 그 믿음을 여러분의 사랑과 헌신의 행동으로 주님께 인정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을 때 주님의 치유와 구원의 역사가 우리 교회 가운데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둘째로, 주님은 영과 육을 함께 치유하십니다.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보시고 처음 하신 말씀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지켜보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신성모독적인 발언이라고 생각을 했지요(21절). 친구들은 중풍병자의 병이 낫기를 바라서 예수님께 아픈 친구를 데려다 놓았는데 예수님의 우선적인 관심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풍병자를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육신의 환자에게 먼저 영혼의 처방을 내리십니다. 우리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문제들을 해결받기를 원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 영혼의 문제,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십니다. 영혼의 문제가 육신의 문제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박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그 때 누군가 그 빚을 대신 갚아주면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정신적인 문제, 도박 중독을 치료받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도박으로 빚을 지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병에 걸렸다가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해서 나았다고 하더라도 그 병을 일으킨 원인적인 환경과 삶의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 그 병은 재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P)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P)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약 5:15-16, 새번역). 치유를 위한 기도와 죄 용서를 구하는 기도는 뗄 수 없이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죄를 고백하는 기도는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용서와 치유를 위한 것입니다. 사탄은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마귀의 정죄함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병마의 질고를 이기기 위해서 야고보 사도의 권면에 따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병원에서는 육신의 질병을 다루지만, 교회는 영혼의 질병인 죄의 문제를 다룹니다. 교회는 중풍병자처럼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인 죄로 고통받은 이들을 전인적인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께로 데려올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장애를 극복하면서 예수님께로 영적인 환자를 데려오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의 출발점이 무엇입니까? 전도할 대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일 오후 2시 기도회는 특별히 교회의 복음전도적 사명을 위한 기도회입니다. 요즈음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도저히 예수님께 아픈 병자를 데려갈 수 없는 친구들처럼, 전도의 장벽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시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도록, 전도할 지혜와 기회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탁구장에 갔을 때 한 분에게 전도를 받았습니다. 언제 자기 교회에서 탁구 대회가 있다면서 한 번 와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시더군요. 결국 제가 뉴라이프교회 목사인 것을 말씀드렸더니 자기가 교회 탁구 선교회 총무라면서 이렇게 탁구장에서 전도할 기회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도 이렇게 전도를 위해서 기도하며 기회를 찾는 분들이 많이 나오시기를 소망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딤후 4:2) 전도하시는 분들이 늘어가기를 축복합니다. 뉴라이프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에 무엇보다 우리 교회의 이름에 걸맞게 새생명의 은혜가 있고, 새생명을 위한 헌신, 전도를 위한 간구가 간절히 드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주님은 치유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25-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의 믿음의 행동을 기특하게 여기시며 중풍병자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셨고 중풍병을 치유하여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거동하지 못했던 반신불수 중풍병자에게 사지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24절)는 주의 말씀에 중풍병자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치유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함이 기적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만드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하게 될 때에는,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 기적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도 심히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주님의 치유의 능력과 죄사함의 권세가 나타나는 기적을 통해 사람들이 구원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애쓰고, 창조적으로 장벽을 돌파하는 친구들의 믿음을 보신 우리 주님께서 죄사함과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아름답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구원의 역사를 위해 전도하시는 분들이 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다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뉴라이프교회 모든 교우들 되시기를 우리의 믿음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목 | 성경말씀 | 설교자 | 설교일 |
---|---|---|---|
누가복음 강해 18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 누가복음 5:17-16 | 김상윤 목사 | 2025-09-07 |
누가복음 강해 17 "주여 원하시면...내가 원하노니..." | 누가복음 5:12-16 | 김상윤 목사 | 2025-08-31 |
누가복음 강해 16: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 누가복음 5:1-11 | 김상윤 목사 | 2025-08-24 |
하나님의 나라 - 좋은 씨와 가라지 | 마태복음 13:24-30 | 유경호 목사 | 2025-08-17 |
누가복음 강해 15: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예수의 치유/축사 사역 | 누가복음 4:31-44 | 김상윤 목사 | 2025-08-10 |
누가복음 강해 14: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 | 누가복음 4:14-30 | 김상윤 목사 | 2025-08-03 |
누가복음 강해 13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예수 | 누가복음 4:1-13 | 김상윤 목사 | 2025-07-27 |
누가복음 강해 12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 누가복음 3:21-22 | 김상윤 목사 | 2025-07-20 |
누가복음 강해 11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 | 누가복음 3:1-20 | 김상윤 목사 | 2025-07-13 |
누가복음 강해 10 하나님의 아들로 성장해 가신 예수 | 누가복음 2:40-52 | 김상윤 목사 | 2025-07-06 |
누가복음 강해 9 시므온과 안나: 노령의 사명자들 | 누가복음 2:21-39 | 김상윤 목사 | 2025-06-29 |
누가복음 강해 8 복음의 첫 증인들 | 누가복음 2:1-20 | 김상윤 목사 | 2025-06-22 |
삼위일체 하나님 찬양 | 에베소서 1:3-14 | 김상윤 목사 | 2025-06-15 |
마음, 행동, 열매 | 갈라디아서 5:16-26 | 김상윤 목사 | 2025-06-08 |
잘 싸우는 법(Fight Right) 3: 선으로 악을 이기라 | 로마서 12:14-21 | 김상윤 목사 | 2025-06-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