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설교
20250713(주일) 누가복음 강해 11
눅 3:1-20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
서론) 여명의 시간이 가까울수록 어둠은 더 깊어집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그랬습니다. P) 오늘 본문에는 1세기 초 예수님 당시 로마 제국과 유대 사회의 통치자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역사적 지표가 될 뿐만 아니라 P) 로마와 로마에 빌붙은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다스리는 세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해 줍니다. 로마 식민지 지배하에서 유대 백성들은 무정하고 잔인한 통치자들에게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무능하고 무도한 통치로 인해 고통받던 당시 사람들은 더욱 구약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구원자,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서 살던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람이 살기에 적당치 못한 광야에서 성장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마지막 절에서 요한의 성장에 대해 이렇게 서술합니다. P) “아기는 자라서, 심령이 굳세어졌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눅 1:80 새번역). 요한이 왜 광야에서 살게 되었는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메마른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의 사명의 때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았습니다.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진 세례 요한은 이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짧고 굵게, 공적인 사역에 들어갑니다. 주의 길을 예비할 사명을 위하여 광야에서 성장했던 세례 요한, 그는 어떻게 주의 길을 예비하였을까요? 요한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3절).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세례 요한은 선지자적 말씀으로 권면하고 거룩한 삶으로 도전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세지가 무엇이었습니까? P)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마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예수님도 동일한 메세지를 선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P)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세례 요한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P)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 4:5-6a).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은 다름 아닌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회개(μετάνοια 메타노이아)는 생각의 전환, 하나님을 향하여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회개함으로 우리를 위한 주의 구원의 길을 예비할 수 있을까요?
본론) 첫째로, 겸손한 자기 인식으로 주의 길을 예비합니다. 4-6절을 새번역성경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P)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누가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해서 죄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세례 요한의 사역을 설명합니다(사 40:3-5).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을 깨우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외침이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알려주는 웅장한 소리였습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가 뭐냐고 물을 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P)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0, 23).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구원자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역할이 자신의 몫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실 그리스도와 비교하여 자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P)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16절 새번역).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못된 기대를 하지 않도록 철저히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종의 자격도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자신에게 와서 물로 세례를 받는데 만족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성령의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을 기대하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겸손한 자기 인식과 메시야의 사자로서 충성스러움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후에 세례 요한을 열광적으로 따랐던 사람들이 점차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걱정스럽게 이야기할 때에 세례 요한은 오히려 이렇게 대답합니다. P)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8-30). 세례 요한은 자신이 결혼식의 주인공이 아니고 신부를 취하여 기뻐하는 신랑을 보고 옆에서 축하하는 친구의 역할을 맡은 것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하나님 구원 역사 무대의 주인공이 되시기 위해 자신은 이제 무대의 어둠 뒤로 사라질 때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고 운전대를 잡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됩니까?
세례 요한은 겸손한 자기 인식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어떤 이들의 헛된 자기 인식을 책망함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마태복음의 병행 구절에 따르면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 중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마 3:7). 그들이 누구입니까? P) 바리새인들은 세속에서 구별된 삶을 중시하는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여러가지 장로의 전통들을 추가로 만들어 지키려는 종교적 열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P) 사두개인들은 전현직 제사장들로서 당시에는 현세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대중들에게 좀더 인기가 있었지만, 세례 요한이 보기에는 두 부류 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집단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강한 어조로 이렇게 책망합니다. P)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7-8절). 이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요한의 세례를 받으면 쉽게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율법적 열심과 성전 중심 종교 생활이 그들의 죄를 면하게 해 줄 것이라고 안일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이만하면 신앙 생활을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쉽게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혹 사두개인들처럼 오래된 교인이고 현재 어떤 직분을 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자기 만족적이고 기득권을 수호하는 신앙생활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의식적으로 바리새인처럼 혹은 사두개인과 같은 자기 인식을 가진 분들은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의식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적 자기 의와 사두개인과 같은 종교적 기득권 의식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례 요한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이는데 마음을 쓰고 있지 않다면, 주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고 있지 않다면, 수많은 신앙인들이 빠졌던 바리새인들의 자기 의의 덫과 사두개인들의 기득권 종교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십시오. 회개하지 않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결국 나중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억하십시오.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해 들려 주시는 성령님의 책망에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는 주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9절). 겸손하게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겸손한 자기 인식은 참된 회개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이는데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 주의 길을 예비합니다. 회개는 주님께로 온전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죄사함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상한 심령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귀하게 보십니다(시 51:17). 그러나 회개는 단지 마음의 변화로 그치지 않습니다. 참된 회개는 무엇입니까? 참으로 회개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에, 그 사람의 회개가 진실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는 태도와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은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됩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도전했을 때에 사람들이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P)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10절). 참된 회개는 말씀에 대한 이러한 반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 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으로부터 참된 회개가 시작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베드로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라고 선포했을 때에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P)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이 때에 베드로는 회개의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P)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회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의 은총을 누리며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의미했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까? 지금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되기 전이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전이므로 어떤 점에서 회개에 대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은 아직 온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완성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삶의 변화, 윤리적인 갱신을 권고했습니다. P) 일반인들에게는 옷 두 벌이 있으면 옷 없는 자에게 한 벌을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도 나누어 주라고 나눔의 삶을 회개의 표징으로 제시했습니다. P) 세리들에게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징수 업무 수행을 요구했습니다. P) 군인들에게는 권력을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윤리적인 변화를 통해서 구원을 얻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며 그에 합당한 의로운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 삶에 임할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P) 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기대하시는 회개에 합당한 삶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주시는 마음에 응답할 때에 우리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주께서 오실 길을 곧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의 역사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회개가 가능합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오실 그리스도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16절). 물세례를 받는다고 정결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영혼의 정결함, 죄사함의 은총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인데 이를 가능케 하시는 분은 신자의 마음 속에서 성화의 역사를 이루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물세례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성령의 세례를 소망하고 기대하는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사람의 응답이 필요하지만, 회개는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시고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주셔야만 가능합니다.
너무나 자주 우리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성령충만하지 못할 때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없을 때 우리 마음이 어떠합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참된 회개가 일어납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성령께서 이루시는 참된 회개가 어떤 것인지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겔 36:25-27 새번역).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주의 길을 예비하시는 역사를 이루시기를 소망합시다. 성령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우리 돌같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럽고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성령께서 우리를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역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P) 세례 요한처럼 겸손한 자기 인식으로 주의 길을 예비합시다. 우리 삶에서 오직 그리스도만 높임을 받으시고 주께만 우리 시선을 고정하기를 소망합니다. P)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옛 사람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변화된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주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P)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날마다 참된 회개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가능케 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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