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누가복음 강해 9 시므온과 안나: 노령의 사명자들
2025-06-29 09:12:23
김상윤
조회수   10

250629(주일) 누가복음 강해 9

눅 2:21-39 시므온과 안나: 노령의 사명자

 

서론) 누가복음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는 아름다운 찬양 세 편이 등장합니다.  P)마리아의 찬양(Magnificat, 1:46-55), P) 스가랴의 찬양(Benedictus, 1:68-79), 그리고 오늘 P) 시므온의 찬양(Nunc dimittis, 2:28-33)입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세 편의 찬양 중 2편이 노년의 신앙인들의 영혼에서 울려나오는 찬양이었습니다. 오늘은 인생의 황혼기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두 사람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P) 바로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이 두 사람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노령의 사명자들이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부모는 난 지 8일 만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천사 가브리엘의 지시에 따라 예수라 이름을 지었습니다(21절). 그리고 율법에 따라 40일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아들을 낳은 마리아의 정결례를 행하고(레 12:2-6), 첫 아들을 주께 구별된 아이로 주님께 드렸습니다(출 13:2, 12, 민 18:15-16). 이 의식의 과정에서 시므온과 안나는 이 아기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임을 알아 보았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노령의 신자들을 어떻게 사명자로 살아가게 하시는지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첫째로, 생명(生命) 있는 우리에게는 사명(使命)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의 찬양 첫 구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29절). 시므온은 평생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주의 그리스도(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바 있었던 그는, 이 날 성령의 감동을 따라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를 보고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저 분이 바로 내가 평생 기다렸던 메시야이시구나.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므온의 찬양은 전통적으로 라틴어 번역 첫 두 단어를 따라 ‘눙크 디미티스’(Nunc dimittis)라 불립니다. 새한글 성경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P)

“이제 주님의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군요, 주인이신 주님,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의 두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으니까요.

모든 백성이 보도록 마련해 두신 그 구원을.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를 주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인 그 구원을.”

 

찬양의 첫 구절이 우리 마음을 먹먹하게 적십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주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주께서 이 나이까지 살려 두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바로 이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아 보게 하기 위함이군요. 이제 주님의 구원이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겠군요.’ 이러한 시므온의 심정이 어떠한 것일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공자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공자의 논어 이인편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P) “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우리가 죽어도 좋다고 느끼는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그 때입니다. 

사명의 시간이 오기까지 우리 삶은 너무 길고 힘들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의 땅으로 떠나 100세의 나이에 약속의 아들을 얻기까지 25년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잘 믿지 못해서 다른 대안들을 찾으려 했는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여러 번 찾아가셔서 약속을 재확인하시고 마침내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인생의 황금기를 다 보내고 40년간 미디안 광야의 목자로 살아가다가 80세의 나이에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명에 부름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기 전까지 40년간 광야를 방황하는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갈렙은 85세의 나이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며 가나안 땅 정복의 선봉에 섰습니다. 다니엘은 80대의 나이에 종말에 관한 예언을 힘들게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무런 소망이 없던 노년의 나이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서 이제 죽어도 좋다고 고백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나이를 먹었을까요?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요? 아기 예수를 만난 또 다른 노인인 안나의 경우 그녀의 평생의 삶은 분명 기구했을 것입니다. 결혼한 지 일곱 해 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보통 당시에 10대에 결혼을 하니까 20대 초반에 청상과부가 되어 84세의 할머니가 될 때까지 과부로 산 세월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겠습니까? 여성의 지위가 신장된 현대에도 남편 없는 삶은 불편하고 아쉬울 때가 적지 않은데, 고대 가부장적 사회에서 과부는 고아와 나그네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의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과부는 제일 힘없고 불쌍한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녀는 묵묵히 그런 혹독한 세월을 살아냈습니다. 안나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평생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도우며 성전의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거나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사명의 순간까지 생명을 이어갔습니다. 여선지자로 인정받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평생의 삶은 바로 오늘 예수님을 만나는 사명의 순간을 위해서 살아 있으라는 명에 순종하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목동으로 이사와서 닭 울음 소리에 익숙하시지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니까요. 그런데 백조의 노래 소리를 들어보신 분 계십니까? 백조의 노래(Swan Song)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P) 고대인들은 백조가 평소에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지만, 죽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믿었습니다. 플라톤의 파이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후대의 문학가들이 이 내용을 여러 형태로 반복했지요. “백조는 죽음을 예견하고, 그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찬미하여 마지막으로 노래한다.” 젊은 활력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육신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어쩌면 우리의 노래를 들어주는 이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때에야,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준비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불러야 할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노래는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그러한 노래를 찾아 불렀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마침내 자신들 생의 존재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생의 최종적 사명은 무엇일까요?

둘째로,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시므온의 찬양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안고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P)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30-32절). 시므온은 아기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보았습니다. 이 아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넘어서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실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지자 안나는 아기 예수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서 증거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대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이 헤롯 대왕과 결탁하여 종교 권력을 휘두르던 성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이 더 중시되던 시대였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절망적인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겨우 생후 40일 된 아기 예수의 모습 속에서 시므온과 안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싹트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부모를 축복하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 아기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해 성령께서 주시는 대로 예언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새번역으로 34-35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이고 하나님의 구원이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우리 기대와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 때문에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으실 것이고, 그러한 모습을 보는 모친 마리아의 마음은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플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추인 생각들이 드러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공생애는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환호했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점점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종교권력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결국 거짓 고소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들의 교만과 허영에 도전하는 예수님의 선지자적인 메세지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는 삶은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생의 사명입니다. 아기 예수를 통해서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보았고, 안나는 예루살렘의 속량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을 우리 삶의 구주로 모시고 살고 있다면, 그 예수님에 대해 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니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삶의 목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P)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신자는 이제 예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전하고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내키면 하고 귀찮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P)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는 살아 있으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횡령, 복음 전도의 직무 유기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 복음의 사명을 위해서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 전도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복음 사명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셋째로, 성령께서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25-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의 신분이나 직업, 배경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세 가지 사실만 드러나고 있습니다. P) 첫째로, 그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다른 인물들처럼 ‘의롭고(δίκαιος 디카이오스)’ ‘경건한(εὐλαβής 율라베스)’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 성경의 노아나 욥, 많은 선지자들이나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의 부모 스가랴와 엘리사벳, 예수님의 법적 부친인 요셉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는 뜻입니다. P) 둘째로,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당시에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예언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P)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사 40:1-2). 

P) 세 번째로 시므온은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특징이지요. 성령께서 그 위에 계셨고(25절),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26절), 성령의 감동으로(27절) 오늘 성전에 들어가 우연치 않게 아기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동역자로 쓰시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계획이나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b). 성령께서 시므온의 마음 속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는 소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기 예수와 역사적인 상봉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그가 평소 성령의 감동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늘 이러한 자리에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하십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며 언제나 성령님께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와 별 상관없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불신앙으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엡 4:30) 우리의 불순종으로 성령님을 소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살전 5:1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명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명의 자리에 설 수 있겠습니까? 안나의 모습이 우리에게 영적 모델이 됩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날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라는 말씀인가요? 기도의 불씨를 이어가는 사명을 모든 성도들이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날마다 예배당에 오지 않더라도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림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을 절제하면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시는 복음 사명에 헌신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며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이 귀한 시간을 복음 사명을 위해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P) 생명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P) 예수님을 만나고 증거하는 일은 우리에게 백조의 노래같은 사명입니다. 시므온처럼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이제 더 이상 소원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안나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일에 기꺼이 헌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P)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임마누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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