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설교
20250420(부활주일)
막 16:1-16 첫번째 부활절 장면들
서론) 할렐루야!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승리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부활절에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지켜 오고 있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 최대의 명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교리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부활절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십니까? P) 부활절 달걀? P) 눈부시게 하얀 백합? P) 동트는 새벽 여명? P) 영광스럽게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 복음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부활 이야기에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미지가 부각됩니다. P) 바로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가장 강력한 역사적 증거입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죽음이 취소된 부활 현장이 바로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놀라운 반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가 바로 빈 무덤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재로 인해 절망 중에 근심하는 이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빈 무덤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첫번째 부활절 장면들을 살펴보면서 부활 사건을 통해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근심이 놀라움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불신이 사명으로 바뀌는 과정을 함께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본론) 첫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근심은 부활 현장에서 사라집니다. 금요일 안식일 준비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겨우 여섯 시간 만에 예수님께서는 절명하셨습니다. 몇 시간이 안되어 해가 지면 바로 안식일이 되기 때문에 공회원 아리마대 요셉이 제공한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은 서둘러 장사되었습니다. 제대로 향품을 발라 시신을 처리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예수님 죽으시는 장면까지 함께 했던 여인들(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살로메)은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품을 미리 사 두고 안식일이 끝나면 찾아가서 어떻게든 예수님의 시신에 못다한 장례 절차를 치루기 위해 토요일 안식일을 보낸 다음 다음날 해가 뜰 때에 일찍이 무덤으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가면서도 그들에게는 대책이 없었습니다. 3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로마 군사들이 지키고 있을텐데 그들이 사정을 보아 줄까, 그들을 가엾게 여겨 돌을 대신 굴려 줄까 염려 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루 이내에 바로 매장을 했는데 유대 산악 지대는 석회암 바위가 많기 때문에 무덤을 깊이 파기 어려워 가난한 사람들은 자연 동굴이나 평토장한 무덤에 시신을 매장했고, 부자들만이 미리 바위에 파 둔 무덤에 시신을 모셨는데 승용차 한 대 무게 정도의 큰 돌로 입구를 막아 두었습니다. 여인들은 향품을 가지고 가기는 했지만,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발라 장례를 마무리하려는 시도는 자신들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뭔가를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 보니 놀라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큰 돌이 굴려져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여인들을 위해서 그 큰 돌을 굴려 놓았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닫힌 방에도 그냥 나타나시는 분이기 때문에(요 20:19) 그 돌이 굴려진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인들은 돌을 어떻게 치울까 고민하고 염려했었는데 그것은 부활의 현장에서 기우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을 위해서 이미 장애가 되는 큰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의 근심거리였던 무덤 입구의 큰 돌이 치워져 있었지만, 사실 그 여인들이 장례를 위해 향품을 드리려던 그들의 수고도 쓸데 없는 일로 판명이 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 죽음의 장소에 더 이상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근심에 눌리고 절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즉시 응답을 해 주시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뭔가 해 보겠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열매가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큰 돌이 우리 앞길을 막고 있어서 도저히 나아갈 방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라도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처럼 부활의 현장으로 나아가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하십시오.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근심거리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근심하여 애쓴 일이 헛수고처럼 보여도 괜찮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우리 수고는 주 안에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 안에서 우리 근심을 놀라움으로 바꾸십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고자 무덤으로 나아갔지만, 그들이 이른 곳은 부활의 현장이었습니다. 못다한 장례 절차를 마치려고 했던 그녀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천사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신 대신에 흰 옷을 입은 청년, 즉 천사가 앉아 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모든 분들은 6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근심에 사로잡혔던 여성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놀라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의 경험과 상식을 넘어선 일 앞에서 그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놀라운 부활의 신비, 빈 무덤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의 현장에서 우리 삶의 문제가 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의 신비 앞에서 우리가 문제라고 여겼던 것들이 정작 아무 것도 아님을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믿지 못합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부활 기사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부활에 관한 소식을 들은 이들이 한결같이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그것을 전파하라고 당부했을 때 여인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P)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8절). P)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도 그들은 “듣고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10-11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때에 P) 제자들도 “역시 믿지 아니하”였습니다(12-13절). P) 열 한명의 제자들이 식사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14절). 마가는 어쩌자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서를 쓰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제자들도 이렇게 믿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포함시켰을까요? 사실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20절까지는 개역성경에서 대괄호로 묶여 있는데, 이것은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처음 제자들이 믿지 못하였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후대 필사자들이 추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처음에 제자들이 믿지 못하였다는 부끄러운 기록이기 때문에 후대 필사자들이 포함시키지 않았으면 해서 유력한 사본들에서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접한 제자들은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을까요? 자신들의 판단과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0-1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경험적 사실에 집착하면서 자신들의 애도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자아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나서 그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천사를 만나고는 두려워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도 예수님과 대화 나누고 식사를 하면서 예수님이신 줄 알게 되고서는 가던 길을 돌아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남아있던 제자들은 방 안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직접 뵙고서 “믿음이 없는” 자라는 익숙한 꾸지람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님의 부활을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14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40일을 이 땅에 머무시며 제자들을 만나셨는데 그 때 예수님을 만난 500여명의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서 가룟 유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 사람을 뽑을 때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P)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2).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에 방점이 있었습니다(행 4:33).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리새인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는 사도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믿으십니까? 정말 믿으십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정말 만나셨습니까?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면 우리 삶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징표가 무엇입니까?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이렇게 진실하게 고백하게 됩니다. P)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사도 바울이 무슨 수고를 하였나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남은 생을 바쳤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하게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결국 내 옛 자아는 죽고, 내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사도바울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삶이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징표가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주님은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주십니다. 15-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놀랍게도 부활하신 주님은 믿지 못하던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8장의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의 버전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합니다. P)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예수님께서 장엄한 이 명령을 주실 때에 놀랍게도 예수님을 본 이들 중에 아직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마 28:16). 부활하신 주님은 어쩌자고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하던 이들에게도 부활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을까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예수님께 종종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믿으셨습니다. 당신을 보내시어 죄사함의 사역, 대속의 사역을 이루시고, 다음으로 성령을 보내시어 믿음없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증인이 될 능력을 주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P)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믿어 주셨습니다.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사명을 주시며 성령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P)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1-22). 그리고 디베랴 호수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조찬을 차려 주시며 당신의 양들을 돌보라고 맡기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자주 믿음 없는 우리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실까요?
이목동에서 플로깅 전도를 시작한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회 주변이 처음 플로깅 전도를 나갈 때보다 조금 더 깨끗해졌습니다. 어제도 5명의 성도들과 함께 2인 1조로 플로깅 전도를 나갔습니다. 어제는 뉴라이프교회 어깨띠를 띠고 쓰레기를 줍는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여러 분들을 만났습니다. 고맙다고, 좋은 일 하신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우리 이웃들이 마음으로 함께 해 주는 것이었지요. 제 귀에는 예수님의 칭찬으로 들렸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교우들이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이웃 한 분이 교회 간판을 보고 산책길에 예배당에 들르셨습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플로깅 전도를 했기 때문에 새로운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결론)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P) 우리를 짓눌렀던 근심과 걱정은 더이상 효력이 없습니다. 부활의 현장으로, 사랑하는 주님께로 나아가십시다. 큰 돌은 치워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 기대를 넘어서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P)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 우리의 의심이 사라지도록 기도합시다. 자기 감정, 자기 판단의 노예가 되지 말고 복음을 믿으십시다. 부활의 주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P) 의심의 자리에 머물지 말고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십시다. 우리들은 믿지 못해도, 주님은 우리를 믿어 주십니다. 복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십시다. 복음 전파의 걸림돌이 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디딤돌이 됩시다. 부활의 증인으로서 변화되기 위해 성령 충만을 구하며, 복음 사명을 위해 헌신하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부활하셔서 사명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목 | 성경말씀 | 설교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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