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사순절 탄소금식 묵상 2 보행자, 순례자, 제자
2025-03-16 08:51:12
김상윤
조회수   29

20250316(주일) 사순절 둘째 주일

시 119:44-45 보행자, 순례자, 제자

 

서론)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현대인은 인류 최초로 몸을 잃은 세대이다.’ 자동차가 다리를 대신한 지는 오래 되었고, 이제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두뇌마저 대신할 지경입니다. 자동차없이 다닐 수 없고, 스마트폰없이 생활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사이보그(cyborg)가 되어 버렸다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현대 문명의 이기들로 인해 우리가 인간다움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시간이 금’이기 때문에 빠른 교통수단들을 이용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쳐 버립니다. 자동차는 우리를 목적지까지 빨리 데려다주지만, 그 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걷기 시작하면, 원래 인간의 이동 속도로 돌아가면, 의미없이 지나치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상인들의 소박한 가게 간판들이 보이고,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걸어가는 행인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올 때에, 걷는 동안에 길 위에 펼쳐진 세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만남과 깨달음의 문을 열어 줍니다. 겨울을 지난 앙상한 가로수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구름사이로 힐끗힐끗 보이는 푸른 하늘이 반갑고, 지나가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 느끼는 어색한 순간을 미소로 넘어가는 경험은 우리에게 충분히 살아가는 의미가 됩니다. 걷는 동안 우리 안의 인간적인 면들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회복해야 할 삶의 방법으로서 걷기가 새롭게 조명된 지도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뿐 아니라 무엇보다 환경을 위해서 걷기를 주된 이동 수단으로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걷기에 대한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걷기의 유익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영국 속담)

P)“약을 써서 몸을 보호하는 약보(藥補) 보다 좋은 음식으로 원기를 보충하는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 보다는 걷는 행보(行補)가 낫다.” (동의보감)

P)“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니체)

P)“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자신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해서 걸어라.” (오드리 헵번)

P)“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 우리의 나날들을 연장시키는, 즉 오래 사는 최선의 방법은 끊임없이, 그리고 목적을 갖고 걷는 것이다.” (찰스 디킨스)

여러분은 얼마나 걸으십니까? 어떻게 걸으십니까? 사순절 탄소금식 두 번째 주일 오늘은 걷기와 관련해서 성경의 가르침을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낯선 땅을 지나는 나그네들입니다.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P) “사랑하는 형제들,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체적인 욕정을 멀리하십시오”(벧전 2:11, 공동번역). P) 2018년 제주도에 500여명의 예멘인이 무비자로 입국해 대한민국에 난민 지위를 요청해서 사회적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P)14년전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1200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나섰고 P) 그 중의 500만명 이상의 난민이 튀르키예,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 등 이웃 국가로 피난했습니다. P)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내에서 370만명은 실향민으로, 650만명은 다른 국가들에서 피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고향을 떠나 조국을 떠나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습니까? 정치적인 난민들의 모습을 보면 영적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인 관점에서는 우리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니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에서 벗어나 방황하게 된 이방인들(exiles)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거류민들(sojourners)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다 자신들이 나그네임을 알았습니다(창 23:4, 47:9).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로 40년을 살았던 모세는 400년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었습니다(행 13:17).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P)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대상 29:15).

이 땅에서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쉬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살이가 어렵고 힘든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세상의 권세를 가진 마귀는 예수님께서 택하신 이들을 미워하고 괴롭힙니다. 어떻게든 불행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덫을 놓고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립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도록, 자기 정체성을 잊고 살아가도록 미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낯선 땅에서 종종 길을 잃어버립니다. 거짓 목자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무리에서 벗어나 영적 야수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P)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 어리석고 겁이 많고 시력이 약한 양들은 쉽게 길을 잃어 버립니다. 그래서 길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선한 목자가 길을 나서십니다. 잃은 양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십니다. 선한 목자로 인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삶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애쓰십시다. 마치 이 땅에 언제까지나 살 것처럼 안일하게 살지 맙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다 세상으로 비롯된 유혹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세상과 친근해 질 수 없습니다. 세상 것들은 다 지나갑니다. 영원하지 않을 것들을 위해 너무 마음을 쓰는 것은 길을 걷는 나그네들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현재 잠시 누리는 즐거움과 행복은 단지 영원하고 변치않는 행복의 맛보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일도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순례자들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P)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시 122:1-2, 6, 9). 시편 120편에서 134편까지 15편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이들이 의식에서 불렀던 노래로 이해됩니다. P) 순례자(pilgrim)라는 표현은 기독교나 이슬람에서 종교적인 성지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P) 특히 이슬람에서는 평생에 한 번 사우디의 메카를 순례하는 것을 무슬림의 5대 종교적 의무 중 하나로 명합니다. 신앙적인 목적으로 길을 떠나는 여행객들이 순례자들입니다. 원래 의미는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나그네, 여행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례자들은 관광을 위해 길을 떠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길을 걸으며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나 터키 성지 순례는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P) 어느새부터인가 프랑스에서 출발해서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져서 많은 분들이 한 달이 넘는 도보 여행에 도전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신 분이 계시지요. P) 산티아고 순례길이 주목받는 것은 낯선 땅에서 걷는 도보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교통 수단이 발달한 이 시대에 온전히 한 달 넘는 기간을 걷기만 하는 여정이 참여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홀로 걷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새롭게 자신을 만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우리 삶은 아버지를 떠난 여정과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여정으로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나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우리를 나그네요 이방인이라고 부른다면, 집을 향해, 아버지를 향해 돌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순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나간 탕자의 귀환이 영적 순례입니다. 올해는 수요기도회에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함께 읽으며 우리의 순례자 여정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여러번 천로역정을 읽었지만, 이번에 성도들과 함께 꼼꼼히 다시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큰 위로를 받습니다. P) 크리스천이 절망의 늪에 빠졌다가 도움의 손길을 붙잡고 빠져나오기도 하고, 고생산에 오르며 천국 증서를 잃어버려 힘들게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과정, 굴욕의 골짜기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마귀와 영적 전투를 벌이는 모습들은 현재 우리의 신앙 여정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번연의 천로역정 읽기가 끝나면 P) 함께 가평에 있는 필그림하우스에 가서 39개 조형물들로 되어 있는 천로역정 순례길을 걸어볼려고 합니다. 수요기도회에 나오시지 못하는 분들도 그 때에는 함께 시간을 내어 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지 순례를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 생활 속에서 다른 목적이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걷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것도 훌륭한 영적 순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새롭게 이목동에서 예배와 기도를 위해 모입니다. 매주 예배당에 오실 때에 우리가 영적 순례의 길에 있음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목동으로 이전하면 저도 많이 걸어 다니려고 합니다. 걸으면서 기도하고 걸으면서 지금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순례의 과정임을 늘 상기하려고 합니다. 예전보다 더 많이 걸으십시다. 걸으면서 기도하십시다. 우리 걸음이 어디로 향하든 궁극적으로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임을 늘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주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시편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시 119:44-45). 이 땅에서 나그네요 천성으로 돌아가는 순례자로서 우리들에게는 걸어가야 할 길이 놓여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길을 잃고 헤메이던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빛으로 우리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P) “나를 따라오라”(마 4:19).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친히 앞서 걸으시며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P)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는 제자들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따라 걸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가장 “자유롭게 걸”을 수 있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관습과 편견에 매여 있습니까? 내 생각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까? 베드로가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 생각과 다르더라도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집시다. 말씀에 순종할 때에야 주님의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이끄실 뿐 아니라 우리 뒤에서도 말씀하십니다. P)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 30:21). 한 때 세상에서 가장 골프를 잘 친다던 타이거 우즈에게도 조언을 하는 코치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천국 귀향길을 갈 때에 주님의 인도하심이 어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주님이 험악한 산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근육을 강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홍해 바닷길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바다를 가르시는 기적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P)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3-24). 주님을 따라 간다고 하면서 우리가 한눈 팔다가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위기의 때마다 주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다가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고차원적입니다. P) “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고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잠 4:11-12). 물론 우리가 방심할 때에는 실족할 위험이 있지만, 주님 따라 걷는 길은 우리가 지레 겁먹는 것만큼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 체질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순례길, 천국 귀향길은 결국 어디든지 예수님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곳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안식처가 있습니다. 때로 이 순례의 길은 혼자 가는 것 같지만, 중간 중간에 함께 걷는 이들을 만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디든지 주께서 이끄시는 길이라면 마다않고 따라나서는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낯선 땅을 지나는 나그네들입니다. 세상 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이 곳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님을 명심하십시다. 좋은 것도 힘든 것도 다 지나갑니다. 세상의 유혹에 미혹되지 맙시다. 우리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의 건강과 환경과 영적 유익을 위해서 자동차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더 많이 걸으시기를 바랍니다. 걸으면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너무 다르고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따르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순례의 여정에서 서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신실한 제자들로서 내일도 걸어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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