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누가복음 강해 6: 사가랴의 찬양(Benedictus)
2025-02-23 08:25:06
김상윤
조회수   31

20250223(주일) 누가복음 강해 6

눅 1:67-79 사가랴의 찬양(Benedictus)

 

서론) 누가복음 예수님의 탄생 기록에는 세 가지 유명한 찬양이 등장합니다. P) 엘리사벳을 만나고 나서 마리아가 드리는 찬양 ‘마그니피카트’(Magnificat), P) 아들에게 요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입이 다시 열린 사가랴의 찬양 ‘베데딕투스'(Benedictus), P) 그리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의 찬양 '눙크 디미티스’(Nunc dimittis).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에서 찬양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체험한 이들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찬양은 하나님을 높이는 행동입니다. 아니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입니다. 사가랴는 9개월만에 입이 열리고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에 천사를 통해 받은 지시에 순종했을 때 사가랴는 회복되었고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성령 충만의 주요한 표시 중 하나는 찬양이 저절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의 지향이 점차 강렬해지고 더욱 예민하게 하나님을 의식하게 된 사가랴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명했던 것처럼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찬양하게 됩니다. P)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9-20). 나의 신앙 생활에 찬양이 얼마만큼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 시간에 찬양에 임하는 우리의 모습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찬양은 구원받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P)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시 147:1). P)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찬양은 예배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예배나 집회 전 준비 찬송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찬송으로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한다는 명목이었지요.  그러나 거의 반세기 전 경배와 찬양 운동이 시작되어 한국 교회 예배 형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지금은 집중된 찬양 시간이 예배를 여는 순서로 거의 보편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이 담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성령충만한 사가랴가 찬양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론) 첫째로, 우리는 약속대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68절에서 7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사가랴는 원수들에게서 억압받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찬양은 어떤 역사적인 구원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묘사하는 두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P) 먼저 ‘돌보다’(ἐπισκέπτομαι 에피스케프토마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살피고 돌보기 위해서 직접 방문한다는 의미입니다. “심방”(visita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우들 중에 누가 아프다거나 연락없이 예배에 빠지게 되면, 전화 심방을 하거나 집이나 병원으로 찾아가지 않습니까? 목장에서 힘써서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사랑으로 돌보는 심방 사역입니다. P) 하나님께서 돌보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찾아와 보니 어떤 상황입니까? 애굽의 노예로 비참하고 억눌린 삶을 살고 있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원수들에게서 구출해 내셨습니다. P) 이것을 ‘속량’(λύτρωσις 뤼트로시스)이라고 합니다. P) 노예로 팔려간 사람을 값을 치르고 되사왔다는 말이지요. 빚을 탕감해 주신 것이지요.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P)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70절).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P)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때문에 이루신 일이었습니다(72-73절). 하나님께서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은 400년 전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나타나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P)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 15:18). P)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7-18). 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신 약속이 출애굽 사건으로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다윗 왕조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마침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 1:1)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사가랴는 이러한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찾아오셔서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다시 또 다시 죄에서 속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P)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내 형제여 주님을 곧 따르라’(찬 290장 1절). 우리의 신실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신실하시다는 것, 주님께서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위로입니다. 주님께서는 약속대로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십니다. 찾아오셔서 돌보아 주십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고 하나님 자녀의 기쁨과 평안과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 심방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긍휼함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7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약속 때문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향한 당신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78-79절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찬양합니다. P)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당신의 언약 백성에게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십니다. P) 하나님의 긍휼(ἔλεος 엘레오스)은 단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참 안되었네…쯧쯧쯧…라고 혀를 차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불쌍한 자를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자비의 행동입니다. P) 개역성경에서는 “긍휼히 여기시며” (ποιῆσαι ἔλεος) 라고 번역되었지만,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은 “자비를 베푸시며”라고 번역했는데 이 번역이 더 원어의 뜻에 가깝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여리고 내려가는 길에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지나갈 때에 ‘참 잘되었다’ ‘꼴 좋다’ 하며 지나갔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참 안되었다….하지만 나는 갈 길이 바쁘니…’라며 그 앞을 쌩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달랐습니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로 그 사람의 상처에 응급 치료를 하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서 돌보아 주고 다음 날 돌아올 때까지 돌보아 주도록 비용을 지불하고 자기 길을 떠났습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한 사람은 그 긍휼하심을 세상에 흘려 보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흘러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면,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푸는 일이 우리 삶에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강권하심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비의 빛이 비추이는 곳,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찬양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 사역이 실천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뉴라이프교회가 이러한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주에 둘째 고등학교 전학 절차를 위해 이목동 사택에 전입 신고를 하니 담당 통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정자동 성당에서 하는 여러 사역들, 독거노인 반찬 사역, 길거리 청소 등에 참여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데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장은 동네 사람들을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위치이니 통장을 하게 되면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우리 교우들 중에도 사시는 지역에서 통장을 하시는 분들이 생기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습니다. 당회에서 허락하시면 언젠가 저도 통장으로 지원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목동에 가서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역이 우리 교회 가운데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구원 사역에 동참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궁극의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74-7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왜 원수의 손에서 건지셨습니까? 그리고 나서는 성결하고 의롭게 살면서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8:1, 8:20, 9:1, 9:13, 10:13).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그 자체가 궁극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에 밝힌 것처럼 P) “사람의 크고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glorify God)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enjoy Him)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궁극의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바로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 반대편 남쪽으로 내려가서 시내산에서 1년을 머무르며 성막을 짓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기준이 되는 율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군인이 배치되기 전에 기본군사훈련과 특기 교육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되고 훈련되어야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의 궁극의 목적,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을 위해 훈련받고 다듬어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사가랴의 찬양은 약속에 따라 긍휼하심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 향하였다가 후반부에서는 자신이 품 안에 안고 있는 아들 요한에 대한 예언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76절에서 77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한 사명의 인식으로 나아갑니다. 사가랴는 9개월 전 성소 안에서 천사가 전한 예언의 말씀을  이제 자신의 비전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뭐라고 전했던가요? P)“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15-17). 성령충만한 사가랴는 자신의 품에 안고 있는 아들이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는 자,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축복하겠습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실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들은 모두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자들입니다. 성령충만하여 하나님 앞에서 큰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찬양은 성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겠습니까? 신자의 찬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약속대로 구원하심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으로 구원하심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역자로 부름받았음을 감사하면서 그 사명을 감당합시다. 왕의 명령을 전할 사자로서 서로를 축복하는 찬양을 부르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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