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설교
20250302(주일) 누가복음 강해 7
눅 1:80 광야에서
서론) 여러분은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행복하십니까? 평안하십니까? 사는 일이 힘겹다고 느끼지는 않으십니까? 아이들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각자 다 자기 몫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며 ‘등 따시고 배부른’ 순간들은 우리 삶의 여정에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 합니다. 이 고해에는 여러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P)생로병사(生老病死), 즉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이 다 괴로움입니다. P)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P)내가 싫어하는 것들, 원수같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고통도 피할 수 없습니다. P)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욕심대로 살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인생입니다. (영상 하나 보겠습니다)
P) 이 고통 많은 세상을 기독교 신앙에서는 광야(曠野)라고 합니다. 광야는 황폐한 땅입니다. 성경에서 P) 광야는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렘 2:6)입니다. 또한 P)“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사 30:6)입니다. 배고프고 사나운 “들짐승이 부르짖는”(신 32:10) 곳으로 약육강식의 논리가 관철되는 공간입니다. 약자는 생존의 위협 속에 살아야 하는 곳이지요.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나쁜 땅입니다. P) “이곳에는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5).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과 공급하심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땅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런데 이런 황량하고 나쁜 땅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무대가 된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놀라운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기 전에 먼저 광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척박하고 위험한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지나게 하십니다. 광야는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까? 광야를 지나는 시간은 우리들에게 어떤 영적인 교훈을 줄까요?
본론) 첫째로, 광야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장소입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난 곳은 유대 산골 마을이지만 그가 자란 곳은 광야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례 요한은 제사장으로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고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어쩌면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1:75-76)로 준비시키기 위해서 세속의 권력과 영광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광야로 이주하기를 선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맹자의 모친이 아들 맹자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해서 세 번이나 이사했던 것처럼, 요한의 부모도 요한의 사명을 위해 그랬을 수 있지요. 또 다른 가능성은 이미 요한을 낳을 때에 나이가 많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일찍 죽어서 요한이 고아처럼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도시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나 한적한 시골에서 공동 생활을 하면서 독신으로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던 엣세네파가 있었는데 요한이 이 공동체에 맡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물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도무지 삶의 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환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고후 10:4)을 통해서 음식과 물을 공급받으며 살았습니다. 기적적인 삶을 살았지요. 처음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의 기적에 감탄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양식에 싫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노예 시절에 먹던 고기와 채소를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적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루도 만나를 내리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물론 만나가 먹기 싫증난 사람들은 그것을 먹지 않기도 했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해 뜨기 전에 들로 나가면 양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해가 뜨면 만나가 다 소멸하여 버렸습니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욕심껏 더 거두면 놀랍게도 벌레가 먹어 버렸습니다. 안식일에는 만나를 얻을 수가 없지만 그 전날에 갑절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P)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진리를 체득하게 되었습니다(마 4:4). 광야의 삶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광야는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걷는 여정이었습니다. 길이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했습니다. 자신들의 스케줄을 자신들이 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여정을 자신들이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막 위에 머물던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민수기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P)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 9:18-23). 광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활의 리듬으로 삼는 훈련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따를 때에만이 우리에게는 길이 열립니다. 자기 마음대로 가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일정을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출발하시면 우리도 가고 하나님께서 멈추시면 우리도 멈추기를 바랍니다.
광야 같은 세상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어린 아이가 자신의 생존을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존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곳이 광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재산, 인맥, 건강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곳이 광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 퍽퍽하고 힘들다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 삶의 방법이 사라졌을 때에, 고라 자손의 시편에서처럼 이렇게 스스로에게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P)“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11). 세례 요한은 광야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법을 몸에 익혔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성장의 비결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완벽하게 체득하여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광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을 받는 공간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그 심령이 강하여졌습니다. 세상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영혼의 깊이와 무게를 갖추어갔습니다. 인적이 드문 광야는 위험한 곳입니다. 도적이 출몰하고 들짐승들이 날뛰는 공간입니다. 광야는 세련되고 교양있는 삶과도 거리가 멉니다. 생존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때로는 수고하고 노력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곳입니다. 고난과 역경의 장소가 바로 광야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영적 훈련소입니다. 세례 요한은 보통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운 그런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적으로 강건하여져 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만들어지는데는 연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세상 모든 민족에게 자신의 후사를 통해 복의 통로가 되겠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25년만에야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양치기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들은 다 죽음을 준비하는 80세의 나이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한 때 이집트 왕자로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해 내겠다는 인간적인 야망이 다 수그러들고 혈기가 잦아진 후에야,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 광야에서 연단의 시간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그 연단의 시간에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던 기성 세대들은 다 멸망해야 했습니다. 그 40년 동안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몸에 익힌 다음 세대들만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현재의 환경은 분명 영적인 광야입니다. 우리 주변에 사나운 짐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고 원망과 불평을 불러 일으키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그런 점에서 다 광야 교회입니다. 교회가 왜 이 모양인가? 교인들이 왜 이러나? 목사가 왜 저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혹시 잊고 있는 영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단받고 성화의 훈련 과정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들지 않은 현실이 달라지면, 여러분이 더 행복해지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 사람만 달라지면, 내가 신앙 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가 더 좋아질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는가를 보려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해서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내가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은 죄인들인 우리가 성화되고 성숙하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섭리의 도구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지 말고 고난을 통하여 우리 영혼을 순결하게 연단하시고 우리 믿음을 강건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P)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사 48:10). 하나님 보실 때에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가?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가? 사랑으로 행동하는가입니다. 천로역정에서 존 번연이 가르치는 것처럼, 굴욕의 골짜기에서 참된 겸손을 체득할 수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신앙적 덕목은 광야 여정을 통하여 체득하는 것입니다. P)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앞으로도 여전히 짐승들이 으르렁대며 우리를 위협할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함정을 놓고 시험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마귀의 불화살이 날라올 것입니다. 마귀의 불화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손에 들고 있는 믿음의 방패 뿐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환난 중에도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광야의 시간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께서 30세 정도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는데, 세례 요한은 6개월 먼저 태어나서 예수님보다 더 일찍 공적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P)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눅 1:77).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이 세례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회개를 촉구함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이었습니다. 가슴벅찬 그 예언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 40:3-5).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광야에서 세례 요한이 이사야의 말씀대로 그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미친 놈 취급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고, 그들 중에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의로운 말씀을 참을 수 없었던 헤롯 안디바에게 참수됨으로 그의 짧고 찬란한 사명을 마치게 됩니다.
뉴라이프교회로서 우리는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 삶에 영접하고 또한 예수님께서 구원 사역을 위해 가실 길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그 사명의 순간이 언제일지 알지 못하지만,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일지 알수 없지만, 우리는 광야에서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비루하고 참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사명의 때를 기대하십시오. 우리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누군가가 새로운 생명, 새 삶을 얻을 수 있다면 광야에서 오랜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결하고 겸손하도록 연단받는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반자로서 우리가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며 강건하여져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날이 오기를 하나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송 ‘광야를 지나며’광야 함께 부르며 주의 만찬에 참여하겠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제목 | 성경말씀 | 설교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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