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빌립보서 강해 13: 하늘 시민권자
2024-10-13 09:05:56
김상윤
조회수   44

20241013(주일) 빌립보서 강해 13

빌 3:17-21 하늘 시민권자

 

서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유대주의 할례당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도록 경계하면서 예수님을 만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동안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민족적인 자부심, 종교적인 의로움,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보다 더 귀하지 않다고, 예수님과 상관없는 다른 모든 것은 배설물과도 같더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에 참여함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기를 원한다고, 그리스도께 붙잡힌 바 된 그것을 붙잡으려고 애쓰고 노력한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삶을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는 경주자에 비유하면서 함께 믿음의 경주에 매진하자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새로운 화두를 꺼냅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 시민권’입니다. ‘천국 시민권’입니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태어나거나 귀화한 국적에 따라 국적,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공항에 가면 잘 알 수 있습니다. P) 다양한 여권 색깔들을 보면 세상에 참으로 여러 나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P) 대다수의 유럽연합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은 적색 계통, 이슬람권 국가들은 녹색을,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들은 파란색 계통의 여권 색깔을 사용합니다. 여권이 나타내는 국적 말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시민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 하늘 시민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이중 국적, 이중 정체성에 대해서 말하면서 근본적인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론) 첫째로, 하늘 시민권자는 누군가에게 믿음의 본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으라고 감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기성 세대가 꼰대로 조롱받는 시대에 우리 중에서 자녀들에게나 후배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어떻게 이런 대담한 권면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앞 단락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과 그 고난에 동참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으려고 애쓰고 있노라고 고백했습니다(빌 3:10-11). 바울의 삶에는 오직 한 가지 관심만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는 것.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한 사례로서 자신의 모습을 신자들에게 제시하고 감히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P) 얼마전부터 비공식적으로 뉴라이프 탁구동호회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아직 탁구를 배우는 입장이지만, 동네 탁구 수준인 성도에게 제가 아는 만큼, 배운 만큼 기본기를 가르쳐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성도는 탁구에 열심이 있어서 일주일에 두번 저랑 탁구 치는 것 말고 추가로 탁구장에 등록해서 전문 코치에게 탁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P) 그런데 전문 탁구 코치에게 배워보니 제가 가르친 것과 똑같은 내용을 자신에게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탁구동호회를 홍보하려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 시민권자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보다 현실적인 수준에서 자신보다 조금 앞선 믿음의 선배들을 따라 믿음의 삶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이 누구에겐가 상대적인 수준에서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앞 장에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믿음의 본이 되는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P) 디모데는 어떤 면에서 본이 되었습니까? “사람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할 때에 디모데만이 바울과 뜻을 같이하여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돌보는데 자원하였습니다. 기꺼이 영적 아비인 디모데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데 헌신했습니다(빌 2:20-22). 에바브로디도는 어떠했습니까? 자기 건강을 돌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섬기고 바울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빌 2:30). 믿음의 성도들의 삶을 눈여겨 보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믿음의 본을 따르는 것에 대해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P)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 어떻게 성경적으로 신앙생활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담임 목사의 모습을 보십시오. 교회를 부지런히 다스리는 장로님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러분을 사랑으로 돌보는 목자들의 믿음의 본을 따르십시오. 저나 장로님들이나 목자들이 여러분에게 신앙의 본이 되고 있다면 우리 교회에는 미래가 밝을 것입니다. 본이 된다는 것이 흠이 없이 완벽함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흠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우리 성경 번역에서는 순화되어 표현하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욕설에 가까운 말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본받는데 매진한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복음 사명을 위해 헌신한 사도였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어떤 댓가도 치르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면에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제가 목사로서 신앙의 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분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P) 우리 교회의 비전, 사명선언문을 기억하십니까? 한번 암송해 보겠습니다. P)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P)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랑하고 섬기며, P) 하나님 나라의 새 생명, 새 삶을 누리고 전하여, P)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 공동체.” 지난 3년은 이 비전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해 온 시간들이었습니다. 제가 지난 3년동안 기도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해왔는데, 그것은 기도가 모든 것을 출발점이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핵심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시대의 풍조를 거슬러 새벽기도를 지키는 교인들이 조금씩 늘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요즈음 새벽기도회를 보면서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종종 새벽기도회에 빠지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예상치 못한 분들이 나와 그 빈 자리를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숫자는 10명 이하로 내려가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추석 연휴에도 그랬습니다. 요즈음에는 평일인데 18명, 19명까지 나오시는 날들도 있었습니다. 또 전체적으로 토요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는 숫자는 늘고 있다는 것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목자들이나 주일 예배 순서를 맡은 분들이 토요기도회는 꼭 참여해서 주일 사역을 기도로 준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은 남아 있습니다. 지난 주부터 주일 예배 후에 치유를 위해 중보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치유를 위해 기도해도 당장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야고보서 말씀의 약속을 믿습니다. 치유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어떤 분들이 그런 거 왜 하냐고 물으시면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환우들을 불쌍히 여기실까요? 우리 가운데 치유의 역사를 행하실까요? 주님께서 우리 욕심대로 행하시지는 않으시지만, 당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여러면에서 교우들 보시기에 부족한 제가 노력하는 부분을 또 한가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공적인 자리에서 교우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부족함을 인정함으로써 겸손을 훈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한 제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고는 목회가 안되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제 연약함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은 약할 때 주님의 강함이 드러난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 따른 것입니다(고후 12:10). 동시에 우리 교인들이 용서를 구하여 용서받고 또한 용서하는 삶을 배워나가기를 소망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목사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으면 성도들도 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고 용서하는 삶을 연습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지 않는 겸손한 신앙을 연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교우들 중 몇 분은 겸손히 용서를 구하고 또한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용서하고 용서받는 모습들을 보면서 제 목회가 전혀 열매가 없는 것은 아니구나 마음 속에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사랑의 핵심에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시고 한 가지만 제 고백을 더 들어 주십시오. 매주 수요기도회 후에, 주일에 교회를 나올 수 없는 자매 한 사람을 위해서 인도자와 사모와 제가 함께 1시간 남짓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매주 토요일 아침에는 한 가정과 2시간 이상 함께 책을 읽으며 소그룹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 담임 목사는 젊은 사람들만 좋아하나보다 오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로서 저를 신뢰하고 제게 배우려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뉴라이프교회에 올 때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는 목회를 하겠노라고 당회원들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게 시간을 내어 달라고 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언제나 시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장로님들과 목자 여러분, 지금까지 잘해 오셨는데, 지치지 마시고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일에 더욱 힘을 모아 주십시오. 우리 교회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존속하며 사명을 감당하려면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목양하는 일에 교회의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헌신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 우리 교회가 교회로서 강점을 가지고 전도와 부흥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좋은 건물, 건전한 재정 상태, 입지 조건, 편리한 교통이 자동으로 교회의 부흥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친절함과 배려로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돌보는 문화가 정착이 될 때에 사람들이 오고 싶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의 헌신이 교회의 경쟁력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신앙의 걸림돌이 되지 말고 디딤돌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본이 되기 위해 결단하여 노력하는 성도들이 늘어갈 때에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둘째로, 하늘 시민권자는 땅의 일에 온통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18-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립보교회 안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중시하는 유대주의자들과 반대의 모습을 가진 이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배를 자신의 신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쾌락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입니다. 즐거움과 재미는 거부할 수 없는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맛있는 것 먹고 편안한 환경에 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고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희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기 부인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과 정반대의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 이런 자들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P)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7-18). 교회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영적 질서가 있고 세워진 권위가 있는데 그것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들의 배,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땅의 일이 어떤 것일까요? 모든 세상사가 땅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일들인데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현세적인 모든 일들입니다. 어느 당이 선거에 이기느냐, 어떤 선택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느냐, 요즈음 유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관심들이지요.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고 필요한 것들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하나님 사랑이 없다면 오히려 하나님 나라와 반대쪽 영역에 속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견해로 교회 안에 분열을 가져오거나, 경제적 이익 때문에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P)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평범한 동기로 포장되어도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판단과 결정 속에 이러한 동기가 숨어 있지 않은지 하나님 나라 시민들은 스스로 잘 살펴야 합니다. 

하늘 시민권자들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도모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건물 이전 문제를 두고 이러한 자세는 필수적입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아래로 경기도 오산으로부터 위로 서울 강남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계십니다. 그런데 교회 이전 문제를 판단할 때에 현재 내가 사는 거주지를 중심으로 판단하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하늘 시민권자라면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무엇이 내게 더 편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교회의 미래 세대를 위해 더 유익한 건물과 위치가 무엇일까를 질문해야 합니다. 당회에서 정한 고려사항 중에 3040세대의 유익을 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심도깊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교회 건물 이전 문제의 현실적인 고려 사항들이 중요한 일이나 그것이 이전할 예배당에서, 왕곡동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각자 어떻게 사명을 위해 헌신할지 모든 교우들이 간절히 기도하며 결단하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뉴라이프교회를 통해서 새롭게 하나님 나라의 새 생명, 새 삶을 누릴 그 누군가를 위한 교회 건물 이전이 될 수 있도록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의 마음을 품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늘 시민권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영광의 날을 기다립니다.  20-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집도 있어야 하고 교회 건물도 있어야 하지만, 다 지나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28년동안 세어보니까 12번 이사를 했습니다. 이제 또 이사를 가야겠지요. 우리가 현재 무엇을 가졌든지, 무엇을 누리든지 그것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미 점점 그것을 경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재산도, 명예도, 인기도, 건강도, 기억력도 점점 사라져갑니다. 서글프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마라나타! 주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런데 그 날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P) 우리 믿음의 경주가 끝나 결승점에 도달하는 날이고, P) 부름의 상을 받기 위해서 시상대에 오르는 날입니다. P) 징그러운 번데기가 고치를 벗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입니다. 우리의 비루한 삶이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날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예수님처럼 변화되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영화(glorification)의 소망이 있으십니까?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함께 읽겠습니다. P)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요일 3:2-3, 새번역). 불완전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날이 옵니다. 연약하고 비천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처럼 영광스럽게 변모할 날이 올 것입니다. 하늘 시민권자로서 이 영광스런 소망을 가지고, 오늘 비루한 이 땅의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누군가에게 믿음의 본이 되어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우리를 영광스럽게 변화시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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