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잘 싸우는 법(Fight Right) 1
2025-05-18 08:08:20
김상윤
조회수   6

20250518(주일) 

엡 6:10-13 잘 싸우는 법(Fight Right) 1: 누구와 싸울 것인가

 

서론) P) 싸우는 것 좋아하십니까? P) 싸움 구경 좋아하십니까? P) 미디어에 등장하는 다른 세계의 싸움 구경은 재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권투나 격투기, 각종 스포츠 경기는 인간의 싸움 본능, 승부 본성을 경기로 승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싸움 구경을 즐기는 사람도 정작 자신이 그 싸움의 당사자가 된다면 그것을 달가와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P) 싸움은 어렵고 힘들고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중 다수는 가능한 한 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싸움은 나쁜 것일까요? 싸움은 없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물리적이고 폭력적인 싸움은 당연히 없어야겠지요. 그런데 다른 종류의 싸움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관계 심리학 전문가 존 가트맨, 쥴리 가트맨이 이런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P) “행복한 커플은 어떻게 싸우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커플이 어떤 커플입니까? 절대로 배우자와 싸우지 않는 사람. 늘 사랑하고 대화가 잘 통하고 서로에게 만족하는 모습… ‘나는 배우자와 평생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가트맨 박사 부부에 따르면 싸우는 부부와 싸우지 않는 부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싸워서 행복한 부부와 잘 싸우지 못해서 불행한 부부가 있을 뿐입니다. 잘 싸우지 못해서 가정이 깨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요. 부부 관계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싸움은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P) 해결 가능한 싸움과 영속적인 싸움. 해결 가능한 싸움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이 있고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냉철하게 생각하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속적인 싸움도 있습니다. 성격, 우선순위, 가치관, 신념이 달라서 생기는 싸움인데 놀랍게도 69%의 문제들은 영속적이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게다가 이 영속적 싸움 중 16%는 교착상태에 있어서 같은 문제를 두고 제자리만 맴돌면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처와 분노를 점점 키웁니다. 이들에 따르면 갈등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10가지 오해가 있는데 그 중에 세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P)오해 1) 지금 벌이고 있는 이 심한 싸움의 해결책을 찾고 나면 모든 게 해결되어 더는 싸우지 않을거야! =>[현실] 대다수의 갈등은 영속적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싸움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르게 접근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P)오해 2) 우리 사이에 갈등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해서는 안돼. =>[현실]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한 커플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P)오해 3) 갈등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야. =>[현실] 대다수의 갈등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잘 관리하는 것이지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론) 첫째로, 우리는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잘 싸우려면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와 싸우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누가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 오나요? 우리는 악한 영들과 싸웁니다. 

오늘은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은 5.18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광주 시민들이 용감하게 저항한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숭고한 한 장면으로 기억되지만, 재판과 조사를 통해 5.18의 역사적 실체가 밝혀질 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5.18민주화 운동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력 소요 사태로 치부되기도 했었습니다. 전국적인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45년만인 작년 12월 3일 또 한번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대통령이 탄핵, 파면되고 내란죄 재판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와 2024년 12월 여의도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에 배치된 계엄군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시민들을 적으로, 폭도로 간주하였지만, 2024년 비상 계엄 상황에서 배치된 군인들은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시민들이 자신들의 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국민임을 기억하였습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싸웁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 내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 내게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내가 못마땅한 사람이 생기면, 우리가 싸울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향하여 미움의 에너지를 모으고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고 빈정거리며 싸우고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급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면 안된다고, 싸움의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동료 사람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형제인 가인과 아벨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농사꾼인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데 자신이 키운 양의 첫 새끼를 드린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처사에 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이 들에 있을 때에 그의 아우를 쳐 죽였습니다. 살인 사건이 생기기 전 하나님께서는 분노에 찬 가인에게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P)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 4:7, 새번역). 그러나 가인은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려는 죄의 세력, 시기와 분노의 영에 사로잡혀서 결국 자신의 아우를 죽였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시기 질투하거나 원망하지만 사실 어떤 사람, 혹은 사람들이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을 대적자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대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에게 미움을 품고 분노할 때에 그 부정적인 감정을 타고 마귀가 우리 삶에 거점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P)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우리가 사로잡힐 때에 마귀가 활개를 치게 됩니다. P) 사탄, 마귀는 그 이름의 뜻이 대적자(사탄), 비방자(디아볼로스)입니다. 마귀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적대시하게 만들고, 서로 비방하고 비난하게 만듭니다. 서로 불신하고 서로를 향해 마음을 닫게 만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귀가 끼어들어 이간질할 때에 갈등과 분쟁이 생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화해와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인(요 8:44) 마귀는 사람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고 수제자 베드로의 마음에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는 예수님을 감히 꾸짖게 만든 사탄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귀는 어떻게든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이 꾸미는 지옥의 음모에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가정과 교회에 지옥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우리를 유혹한 마귀에게 죄의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 윤리적 존재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해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쓰레기가 쌓여 있는 도시의 뒷골목에 바퀴벌레나 쥐들이 들끓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회개하지 않은 죄가 남아 있으면 악한 영들이 몰려들어, 성령님의 전이 되어야 할 우리 마음은 죄악으로 더러워지고 강퍅해지게 됩니다.

마귀는 부정적인 생각과 말로 마음의 평안을 빼앗으며 공동체의 연합을 망치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삼는 악한 존재입니다. 마귀는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행복을 망치려는 악한 영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P) 악한 영들이 침투할 때 분명한 징후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에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런 감정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사라지게 될 때에,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집중하게 된다면, 그것은 100% 마귀가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사로잡아서 하나님을 망각하게 만들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점차 사라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마귀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영적 싸움의 첫 단계는 바로 우리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나와 갈등 관계에 있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우리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의 주적은 우리의 믿음을 소멸시키고, 소망을 훔쳐가고, 우리의 사랑이 식게 만드는 바로 그 사탄 마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싸워야 합니다. 어떻게 잘 싸울 수 있을까요? 주 안에서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잘 싸울 수 있습니다. 10-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주 안에서 강건할 때에 우리는 영적 싸움을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의 육신적인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의 궤계는 워낙 간사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지혜나 판단력으로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경우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자신의 판단과 느낌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어떤 상황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확신합니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틀렸더라도 그 사실을 선뜻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둘째로, 마음이 점점 굳어집니다.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타인을 정죄하는 마음이 커져가게 됩니다. 셋째로,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원망과 불평이 커져갑니다.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집니다. 헌신의 자리에서 떠나가게 됩니다. 자기 중심의 신앙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점차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 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영적으로 강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최신형 컴퓨터라고 해도 전원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에야 신자일 수 있습니다. P)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영적으로 잘 싸우려면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 안에 머무를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지속적이고 친밀한 교제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P)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우선 영혼의 양식인 주의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시 119:105). 또한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께 구별된 시간을 확보해서 늘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일정한 시간을 중보 기도에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뉴라이프교회가 풍상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중보기도자들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은사에 따라 사랑으로 섬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가지 모양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사명을 감당할 때에 주의 몸된 교회에 소속된 지체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섬김으로 성도의 교제에 참여할 때에 우리는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 영혼에 영적인 힘이 생겨서 영적 싸움을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토요일 공동체별 헌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여러 교우들이 예배당 곳곳을 청소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왔습니다. 이목동에서도 그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는 우리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사랑의 헌신을 통해서 주 안에 거하여 성령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늘 주 안에 있어서 우리 앞에 당한 영적 싸움에 잘 준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최종 승리를 위해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를 통해 사도 바울이 교회에 대한 교리를 가르칠 때에 가정과 사회 생활에 대해 교훈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영적 무장에 대해 교훈합니다. 영적 싸움에 대해 알고 대비할 수 있어야 그리스도인의 삶은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과 사람에만 초점을 맞출 때에 기독교는 윤리적 가르침으로 전락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새적인 종교인으로 타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갈 3:11)고 했습니다.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지 않을 때에,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법을 망각할 때에,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더라도 우리 신앙 생활은 육체적인 것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해서는 영적 싸움에 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최후 승리의 순간까지 우리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비록 십자가에서 옛 뱀의 대가리가 으스러졌지만, 여전히 그 꼬리의 힘은 남아 있고 그 맹독은 가까이에서 위협적입니다. 그 졸개들은 여전히 불법적으로 활개치며 먹이감을 찾아 다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경계 상태를 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영적 싸움에 늘 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 영적 싸움을 어떻게 싸울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최후 승리를 얻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 위하여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영적 싸움을 잘 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P) 먼저 우리 주적이 누구인지를 잘 분별하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 가운데 악한 일을 꾸미는 어둠의 악한 영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관계를 망치고 우리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사탄 마귀의 궤계입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P) 말씀과 기도와 사랑의 헌신으로 주 안에서 강건하여지십시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우리 앞에 당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P) 최후 승리를 기대하며 끝까지 영적 싸움을 싸우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신앙 생활을 육체로 마쳐서는 안됩니다. 천국 문에까지 도착하셔야 합니다. 최후 승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한 후에 서기 위하여, 영적 싸움을 잘 싸우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우리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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