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선택, 막전막후
2024-12-14 21:35:22
김상윤
조회수   40

       선택, 막전막후 (창 13 : 8 - 18) 

 

                         김천 조마오광교회 황수진 목사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현재는 과거의 선택들로 이루어졌고 미래는 지금 한 선택들의 결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택은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선택을 한 번 하면 결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때로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선택에는 그에 따른 책임도 따릅니다. 남 탓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영국의 분석 철학자 조지 무어가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선택”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무거운 선택 앞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어떤가요?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마 6:33)”인 인생을 살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택을 숨죽여 지켜보고 계시고 선택하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깊이 들여다보신다는 것을, 우리는 정말 기억하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나누며 이 물음 앞에 함께 서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말씀 본문에서 백부와 조카 사이인 두 사람, 아브람(하나님께서 아직 그의 이름을 바꾸시기 전이므로 아브람으로 칭하겠습니다.)과 롯의 서로 다른 선택을 마주합니다. 삶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선택들 중 하나로 여겨질 수도 있었던 이 날의 선택이, 이후 두 사람의 삶과 길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어떤 선택이 앞뒤없이 그냥 훅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그들의 선택에는 배경이 있었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데 각자의 가치관과 믿음 여부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선택에는 항상 막전막후의 상황, ‘어떤 일이나 결정의 앞뒤 상황, 또는 그것의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아브람과 롯의 선택의 전후 사정,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들 선택의 속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그들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매 순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가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진리를 마음판에 새기며 삶에 심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아브람과 롯의 길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 이 선택의 막전 이야기를 볼까요?  

 

창세기 12장에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은 그는, ‘복’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먼 길을 나서지요. 그 때 아브람의 조카 롯도 백부인 아브람과 함께 했습니다(롯의 부친인 데라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머물며 점점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나아갔는데, 약속받은 복은 오질 않고 극심한 흉년이 찾아옵니다. 그 땅에서 버티기 어려웠던 아브람 일가는 결국 비옥한 땅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름다운 아내로 인해 목숨과 재산을 잃을까 봐 두려웠던 아브람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사실은 누이이기도 하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지요. 그 어리석은 판단과 선택으로 눈뜨고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그러나 현실만 바라본 아브람의 소심함과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그를 택하여 고향에서 이끌어내시고 ‘복’이 되게 하겠다 정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브람과 그 가족을 지키십니다. 아브람에 대한 과한 편애로 보이는 ‘특별한 개입하심’으로 오히려 애굽 왕에게 재앙을 내리셨지요. 그 결과 아브람은 무사히 아내를 되찾았을 뿐 아니라, 재산까지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아브람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아브람이 조금쯤은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요? ‘내 계획이 아무리 좋아봐야 그저 차선이나 차악일 뿐,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내 생각을 넘어서는 최선이구나. 하나님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구나’ 라고요.

이 일 후에 아브람은 네게브로 이주했고, 애굽으로 내려가기 전에 살았던 벧엘과 아이 사이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런데 재산이 많아지자, 전에는 없었던, 생각지도 못 했던 문제와 갈등이 생겨납니다. 땅이 좁고 물이 부족해서, 백부인 아브람의 목자들과 조카인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끊이질 않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선택 이전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선택의 순간, 막이 오릅니다. 

 

계속되는 불화와 대립에, 생각다 못한 아브람은 조카에게 제안합니다. “친족인 우리가 다투지 말고 서로 떠나자”고요. 그리고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9하)”

고대의 친족 공동체의 관습상, 아브람은 연장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롯이 백부인 아브람에게 선택권을 드리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이 가진 당연한 권리를 먼저 내려놓았습니다. 다툼을 피하고 조카를 배려했던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분의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는 모습입니다. 여기부터가 아브람의 좋은 선택의 시작이었습니다. 

한편 롯의 선택은 믿음이 아닌 인간의 도리로만 보아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문제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백부이자 공동체의 어른인 아브람에게 최소한의 예우도 하지 않았습니다. 냉큼 선택권을 가졌고 자기 생각에 가장 좋아 보이는 곳을 선택해 차지합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고 깊은 숙고도 없었습니다. 사랑도 배려도 믿음도 없는, 자기 자신만 옳고 자신에게만 좋은 선택을 합니다. 

롯은 눈을 들어서 보고, 물이 넉넉하고 초원이 넓은 요단 계곡 지대를 선택합니다. 현실적으로 보고 판단한 선택이었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눈은 한 치 앞을 못 봅니다. 당장 30초 후에 일어날 일을 못 봅니다. 내 등 뒤를 보지 못 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의 속을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기에, 영원을 바라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공동체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롯은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 눈으로 보기에 제일 좋은 조건에 집중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10).” 

물이 귀한 근동 지방에서 물이 넉넉하다는 것은, 더 이상 물을 것도 따질 것도 없는 최고의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최상의 조건이었겠지요. 롯은 그 좋은 조건에 취해서, 그 땅의 보이지 않는 문제, 영적인 문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을 닫아 버렸습니다. 곧 망하게 될 최악의 땅이라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보고도 못 본 척했는지도 모르지요.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현실적 이익과 조건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생각과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모십니다. 믿음의 공동체의 선택과 결정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가?”라는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지 않는 선택에는 “나”와 “내 이익”이 핵심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결국 아름답지 못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좋아 보이는, 최고의 조건을 가진 땅으로 떠났던 롯과 그 가족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악으로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간신히 생명만 건저 나왔다는 슬픈 후일담이 있습니다.  

조카가 조건적으로 가장 좋아보이는 땅을 선점해서 동쪽으로 떠난 후 아브람은 척박한 땅에 혼자 남았습니다. 유일한 혈육인 조카도 떠났으니 이제 아내를 제외하고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외롭기도 하고 어쩌면 인간적으로 섭섭하고 막막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때 이 선택의 막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믿음으로 상황을 보는 우리에게는 이 부분이 진정한 핵심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찾아오십니다. 아브람은 혼자가 된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던 거지요. 그리고 놀라운 말씀과 약속을 주십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 오직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서만 오간 특별한 대화입니다. 그야말로 비밀이고 비전이었지요.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그 땅을 가로로 세로로 두루 다녀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을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거주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주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롯이 본 지금 당장이 아니라, 멀리 근원적으로 깊은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현실, 조건이 아닌, 약속과 미래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좋은 땅을 롯에게 양보하고 척박한 지역을 택했습니다. 택했다기보다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당장에는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복 주시는 땅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자신의 권리, 이익을 먼저 내려놓고 현실적 바람과 욕심을 비웠을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초라하고 허한 빈 자리를 그 분의 함께하심과 은혜와 복으로 채우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유일한 혈육이 떠나고 (아직) 자식도 없어서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티끌보다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자손이 이 땅의 주인이 된다고 하십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붙들고 그 땅에 살았습니다. 이후에 일어난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을 모두 잘 알고 계시지요? 그 드라마는 바로 오늘 본문의 이 선택 막전막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볼 때 손해 보고 어리석어 보인 아브람의 선택 막후에 숨어 있는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가장 가까운 혈육이 이익을 찾아 떠나고 눈에 보이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전보다 더 가까이 오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 좋은 조건들은 아브람을 떠났지만, 모든 환경과 사람들을 주관하시고 이끄시고 바꾸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주변의 조건, 환경, 눈앞에 있는 이익과 손해, 그것만 바라보지 마십시다. 선택 막전막후에 있는 하나님의 생각, 그 분의 관점, 그것을 바라보고 따라가고 거룩한 선택을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를 맞이하는 우리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은 인간이 찾아가고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실 때 받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약속하고 보여주는 복은 허상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만이 오래 가고 영원합니다. 

안타깝게도 롯은 이 진리를 알지 못 했고, 혹시 알았더라도 그 지식이 그의 선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롯의 불신앙이고 불행이었습니다. 

한편 아브람은 애굽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복이 자신의 계획이나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어느 정도는, 아직 완벽하게는 아닙니다. 앞으로 훈련과 배움의 과정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환경과 조건을 넘어서서 복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믿었기에, 아브람은 선택 앞에서 조카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었고 초라한 결과에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과 비밀 회담을 하면서 굳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두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과 함께 예배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13:18).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13:1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곳은 원래 복이 있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사람들을 두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롯이 선택한 원래 조건 좋은 땅이 아니라, 아브람이 거주하는 척박한 땅에 함께 계시고 복을 주시기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가 어디든, 그 자리가 복의 자리가 됩니다. 이것이 아브람을 부르실 때 주셨던 약속 “너는 복이 될지라.”의 핵심입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나는 너 있는 자리에 같이 있고, 거기에 복을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복을 받아 우리가 있는 그 자리, 우리가 가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복과 기적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선택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쪽을 최우선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오래 가고 영원한 진짜 복을 받아 누리는 비결입니다. 

조건을 보는 우리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보고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내 안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을 따를 수 있도록, 내 선택 전에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내 삶의 선택과 결정 가운데에, 우리 교회의 선택과 결정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것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아브람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찾았듯, 때로 우리의 선택이 불안하고 믿음과 비전이 흔들릴 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도록, 더욱 예배의 자리로 모여야 하겠습니다. 

아브람이 갈등과 이익 대신 양보와 배려를 택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가 선 자리에 함께하시고 복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내 이익, 내 감정, 내 주장만 선택의 중심에 세우지 않고, 화평에 앞장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할 것이냐고 주님께서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이 날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애굽으로 내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 땅을 차지하러 올라왔을 때, 그들은 다시 중요한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민수기 1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대해 알아보고자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총 열 두 명의 정탐꾼을 파견합니다. 40일 후에 돌아온 열 두 명 중 열 명이 매우 현실적인 보고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맞는데.......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강한 거인족)을 보았으며..... 여러 민족들이 이미 거기 살고 있습니다(민 13:27-29).” 그래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의 안목으로 그 땅과 백성들을 바라보고 믿음의 눈으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 14:8-9).”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을까요? 여러분과 제가 그 자리 그 회중 속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었으려나요? 이스라엘 백성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 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앞에 있는 현실이고, 우리와 교회 공동체가 매 순간 해야 할 선택의 모형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 이익, 내 관점을 내려두고,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생각으로 보고 선택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믿음으로 따르도록 기도하며 거룩한 지혜로 살아가는 우리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뉴라이프교회가 새로운 선택과 이주 앞에 서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라 새 여정을 준비하는 뉴라이프 교회와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거룩한 선택의 복이 크게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선택과 이동의 여정 중에 많은 목소리들과 의견들이 있겠지요. 우리의 시야가 제한적이기에, 고민하고 주저하고 서로의 생각이 달라 갈등하는 순간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화평을 이루어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너무나도 현실을 따르다가 허망하게 끝을 맺은 롯의 선택이 아니라, 좀 모자라 보였으나 결과가 아름답고 거룩했던 아브람의 선택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갈 길을 인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사람의 안목과 목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과 목소리를 알고 그 뜻을 따라가서 ‘복’ 그 자체로 우뚝 서는 교회와 여러분으로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뉴라이프 교회와 성도님들의 ‘선택, 막전막후!“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사랑스럽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개입‘으로 편들어주시는 즐겁고 감사하고 놀라운 여정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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