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설교
20250112(주일) 누가복음 강해 1
눅 1:1-4 복음 이야기
서론)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신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원하신다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모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복음은 내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목적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네 개의 복음서가 담겨 있습니다. P)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이미 잘 아시겠지만, 사복음서는 다 고유한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서방 교회 전통에서는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 교부 히에로니무스의 해석에 따라 P) 에스겔에 나타난 네 생물의 순서와 복음서를 차례대로 연결합니다. P)“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겔 1:10). 그래서 P) 마태복음의 상징은 사람, 마가복음은 사자, 누가복음은 소, 요한복음은 독수리가 상징물이 됩니다. 유럽의 성당이나 역사적 유물들에는 이러한 이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근대 개신교 전통에서는 계시록에 등장하는 보좌 앞의 네 생물을 네 복음서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분들이 있는데 꽤 그럴듯합니다. P)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 4:7). 사자를 상징물로 하는 유다 지파 다윗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을 서술하고 있는 마태복음은 사자 복음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과 수난 기사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소 복음이라고 하는 별칭이 잘 어울립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인성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해서 사람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영원의 관점에서, 영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을 묘사하기 때문에 독수리복음이라고 합니다. 어떤 복음서에 어떤 동물 상징을 연결하는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신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합니다. 그것은 복음서의 특징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겠지요. 앞으로 누가복음을 함께 찬찬히 묵상하면서 어떤 식의 이해가 더 각자에게 맞을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구원의 교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니 신학적 오류에 빠질까 염려는 안하셔도 됩니다.
누가복음은 사복음서 중 유일하게 저자 서문이 담겨 있습니다. 데오빌로라는 인물에게 헌정하는 형식을 띠고 있지요. 오늘은 이 짧은 본문을 통해서 복음 이야기는 과연 어떤 이야기인지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복음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본론) 첫째로, 복음은 ‘더 큰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저자 누가의 표현에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이것은 구약에 기록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는지를 염두에 두고 쓴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수동태로 쓰여진 것은 흔히 ‘신적 수동태’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능동태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이루신 사실에 대하여”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에 대한 보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어떠한 일을 이루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로 공적인 사명을 시작하실 때에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유명한 연설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 취임 연설이라고 합니다. 회당에 들어가셔서 선지자 이사야 61장 1절 이하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8-19, 2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이 땅에서 감당하실 사명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당시 회당에서 예수님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성취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에 대해 직접 목격한 증인들과 그들의 제자들, 그리고 그들의 제자들에 의해서 전승되어 우리에게 전해옵니다. P) “목격자요 말씀의 일꾼된 자들”은 1세대 증인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전에 뵈었던 사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전한 생명의 말씀은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였습니다(요일 1:2). P) 사도들이 가르치고 전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이야기로 정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 베드로의 제자였던 마가나 바울의 제자였던 누가 같은 이가 있었습니다. 사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쓰여졌다는 것이 지금은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것은 마가복음의 자료 상당부분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다음에 마태복음이 쓰여지고, 이 두 복음서를 비롯한 초대교회 여러 자료들을 참고로 해서 누가복음이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누가가 ‘더 큰 우리’의 이야기로서 복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비록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어도 사도 바울과 선배들의 가르침을 우리 중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P)“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이들은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을 사랑하며 따랐습니다. 여전히 보지 못하는 중에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성령으로 동행하며 즐거워하며 기뻐하였습니다. 이천년 전의 예수님과 사도들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가 더 큰 복음 이야기의 일부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지구상에 수많은 가시적인 교회들이 생겨났다가 없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시작한 교회 중에 남아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지금 지구상에 건재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복음 이야기는 복음서를 읽으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며 헌신했던 교회들을 통해 다시 또 다시 쓰여졌습니다. 장소와 사건과 등장 인물은 달라도 모든 교회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더 큰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 오실 그날까지 이 땅에 존재하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이루신 일에 대해 우리가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 교회는 복음 이야기의 일부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더 큰 우리’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큰 일을 기대합시다. 주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시도합시다. ‘더 큰 우리’ 중에서 이루신 하나님께서 작고 보잘 것 없는 우리 중에서도 이루실 것입니다.
둘째로,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3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P) 데오빌로(Θεόφιλος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을 풀어보면,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 ‘하나님의 친구’ 이런 뜻을 가집니다. 누가가 누가복음서를 헌정한 이 데오빌로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P) 그에게 각하(κράτιστος “크라티스토스”)라는 총독급에나 사용되는(행 23:26, 25:1) 경칭이 붙은 것을 보면 그가 로마의 고위 공직자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 이름의 풀이대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 외에 의지할 대상이 없는, 그래서 하나님을 지극히 의지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하는 세리와 같은 사람들을 사랑합니다(눅 18:13-14). 주님께 용서받은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며 그 머리털로 닦고 향유 옥합을 부어 드린 죄 많은 여인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눅 7:36-50).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요 14:21).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취임 설교로 읽으셨던 이사야 61장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누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누구를 위한 사역을 하시겠다고 하십니까?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P)“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사회적인 약자와 소외 계층, 사회적으로 별 쓸모없고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관심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자유케 하시고, 치유하시고,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는데 마음이 가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쏟습니까? 가족을 돌보고 오랫동안 친한 교우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당연하고 칭찬받을 일이지만,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일은 그 이상입니다. 우리에게 이웃이 누구일까요?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좌우에 계신 분들만이 아닙니다.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은 어떤 사람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그 누군가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VIP(very important person)라고 불러야 합니다. 우리 뉴라이프교회 성도들이 우리 교회 문턱을 넘는 분들을 VIP로 잘 대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전하실 분들을 보내어 주실 때에 교우들의 마음이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 뉴라이프교회의 2025년이 복음 이야기로 아름답게 쓰여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복음은 믿음을 더 견고히 하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4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데오빌로는 지체 높은 귀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세례 교육(catechism)을 받는 사람이거나 이제 막 세례를 받은 초신자일 수 있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의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 복음 이야기를 찬찬히 전해주기로 마음먹고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물론 이는 데오빌로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책을 쓸 때에 의미있는 대상에게 헌정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러한 관습에 따라 데오빌로를 언급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을 들어야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고, 말씀을 배워야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한 책의 종교, 그리스도인은 한 책의 사람들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성경을 사랑하여 늘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복된 삶이라고 믿었습니다(계 1:3).
성경의 이야기들을 읽고 묵상하면 점차로 우리 사고 방식이 성경적인 세계관에 맞추어져 갑니다. 성경 속 인물들의 모범과 과오가 우리 삶의 스크립트가 되어 우리 인격이 새로와집니다. 성경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교훈이 우리 삶에 점차로 실현되어 갑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주관자이시고 구원자시라는 믿음이 자라갑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P)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영적 어린 아이들은 지식과 믿음이 온전히 결합하지 못하여서 온갖 세상 풍조에 영향을 받으며 신앙 생활을 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일치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삶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어 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영적 성장을 멈추지 않는 사람입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꾸준히 말씀을 배우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훈련한 결과 우리 믿음이 성장하고 진보하게 됩니다.
믿음은 성장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 현상 유지는 없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 믿음으로 사시는 하나님의 의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뒤로 물러가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십시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갈 때에, 우리 믿음이 점점 더 견고해 질 수 있습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더 큰 우리’의 복음 이야기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들로서 복음 이야기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 이야기를 통해 올해 믿음이 한층 견고해 지시고 영적 성장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슬픈 마음 있는 자’ 찬양으로 오늘 말씀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슬픈 마음 있는 자 몸과 영혼 병든 자 누구든지 부르시오 예수 이름 부르시오/ 그 이름을 믿는 자 그 이름을 부르는 자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구원 얻으리/ 예수 예수 오 능력의 그 이름 예수 나 외쳐부르네 예수 예수 오 구원의 그 이름 예수 나 외쳐부르네 예수 그리스도// 은과 금 내게 없으나 나 가진 것 너에게 주니 능력의 이름 예수라 그 이름을 붙드시오/ 그 이름을 믿는 자 그 이름을 외치는 자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주의 영광 보리라/ 우리게 주신 영광의 이름 나 어찌 잠잠하리 세상에 크게 외쳐부르리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제목 | 성경말씀 | 설교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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