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설교
20250427(주일)
요 20:19-23 성령을 받으라
서론) 여러분은 힘든 일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따르면 남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고,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상대를 찾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성별로 심리적 차이를 설명하는 이런 주장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인 우리에게는 여전히 꽤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동굴로 들어가는 것은 문제로부터 도망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나름의 노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동굴에 들어간 남자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던, 아니 듣고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을 자신들의 동굴로 삼아 그들의 좌절을 곱씹고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그토록 신뢰하고 따랐던 스승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3년 동안 예수님을 추종했던 그들의 수고를 헛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낙담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다락방의 문들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절망의 공기를 마시며 죽음같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니 그들도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만의 세계에 침입해 들어오셨습니다. 그들의 침묵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들이 헛되이 자신들의 무덤 속에 머물러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절 둘째 주일에 우리는 무덤같은 다락방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를 소망합니다. 무덤에서 나온 주님께서 자신들이 만든 무덤에 갇혀 있던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요?
본론) 첫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평안하라’고 권면하십니다. 19절과 21절에서 반복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P)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헬라어로는 두 단어입니다. P) “에이레네 휘민(εἰρήνη ὑμῖν).” 우리말답게 번역한다면 P) “여러분 안녕?” 정도의 어감을 가진 표현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급에 들어서서 하시는 말씀 같지요. 평범한 인사이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나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체포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더 큰 두려움은 예수님의 부재였습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따랐던 주님이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지난 날 예수님께 걸었던 그들의 기대가 한 순간에 다 무너져버린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함이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 중 누군가는 며칠 전 주님께서 다락방에서 하셨던 말씀 한 구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P)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평안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관용적인 인삿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며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이제 부활하신 주님임을 확실히 증거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맞구나. 진짜 우리 주님이네. 제자들은 비로소 두려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제자들의 얼굴에 반갑고 안도하는 미소가 번져갔습니다. 영영 떠나보낸 줄 알았던 주님을 다시 찾은 감격이 벅차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두려움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둘 때가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의 무덤에 자기 발로 걸어들어가 그 죽음의 무게로 자신을 짓누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 원수 마귀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마귀만 신나는 일 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우리 원수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합니까? 소중한 우리 영혼을 망가뜨리는 일을 합니까? 주님의 평안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환경이 좋아서, 일이 잘 되어서, 인간 관계가 형통해서 누리는 세상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서 아무도 우리 영혼을 빼앗을 수 없음을 믿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평안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하나님은 우리와 뉴라이프교회에 대한 생각이 다 있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차원이 다릅니다. 제발, 감히,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알수 있는체 하지 맙시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제발, 감히, 성경의 가르침과 상관없이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저런 사람과 함께 신앙생활하게 하실 수 있지? 이미 일어난 일도, 이미 우리 앞에 있는 그 사람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맙시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를 두려움과 근심과 절망에 빠뜨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우리에게 당신의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의 평안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님의 평안의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P)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염려하는 대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대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평강이 아침 햇살처럼 우리 영혼에 임하십니다. 마귀가 피워놓은 불신과 의심과 근심의 안개는 사라지게 됩니다. 주님은 날마다 그렇게 사셨습니다. 우리도 늘 기도하며 감사함으로 주님의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용서하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고 나서 뭐라고 하십니까? P)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요 3:17). 예수님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 즉 사도(아포스톨로스)로서 의식이 충만하셨습니다. P)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은 스스로의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이의 것”(요 7:16)이요 또한 예수님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시”다는 확신 속에서 공생애를 사셨습니다(요 8:16). P)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셨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입니다. P)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우리 자신을 포함한 온 인류의 죄를 속량하는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영생의 소망을 예수 믿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보냄을 받으신 주님은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완성하시고 이제 주의 몸된 교회인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주의 몸된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죄사함의 복음, 구원의 소식을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요? 바로 내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용서함으로써입니다.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엄청난 약속입니다. 인간인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누구의 죄를 용서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자격이나 스스로의 판단으로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온전히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은총의 역사입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기로 결정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는 성령께서 내 마음 속에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누가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먼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해는 복수의 당사자 사이에서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먼저 누군가를 용서하면, 성령의 역사로 놀라운 화해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2018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경찰관 엠버 가이거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처구니없게 실수로 26세의 흑인 회계사인 보탐 진의 아파트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보탐 진이 침입한 것으로 오해한 그녀는 보탐 진에게 총을 발사해서 그가 죽었습니다. 엠버는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미국 사회는 인종 문제, 경찰 폭력에 대한 논쟁으로 들끓었습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희생자 보탐 진의 동생 브랜트 진이 법정에서 증언을 마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는 판사에게 부탁합니다. “제가 그녀를 안아도 되겠습니까?” P)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법정 안에서 브랜트 진은 형을 죽인 엠버 가이거를 꼭 안아줍니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배심원들도, 방청객들도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재판을 진행했던 판사는 자신의 성경을 엠버 가이거에게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용서가 어떻게 우리 삶에 나타날 수 있는지 놀라운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신앙의 힘으로 누군가를 용서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 교우들의 삶에도 그러한 기억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용서하는 사람들의 용감하고 신앙적인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는 세상에 흘러갑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의 복음을 전하며 실천하는 것이 보냄을 받은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드리는 주기도문의 기도처럼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 누군가를 용서하십시오.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 서로 용서하며 사십시오.
셋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이 사명을 위하여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십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축복하겠습니다. “성령을 받으세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의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은 50일 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성령강림의 역사로 성취되었지만, 지금 같은 장소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시면서 성령 강림의 역사를 시현하시고 계십니다. 생명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동시에 성자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생명의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재하실 때에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시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용서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어떻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집니까? 진실하고 겸손하게 회개함으로 죄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믿는 모든 사람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지만,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배터리의 전압이 떨어지면 램프의 빛이 희미해져가고 깜빡거리는 것처럼 성령충만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도 무기력하고 죄의 권세에 노예가 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내 생각으로, 살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았던 모습에 대해서 회개합시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자신의 죄를 탕감받고도 자신에게 잘못한 형제 자매를 용서하지 않은 우리의 굳은 마음을 회개합시다.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을 회개합시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자신이 만든 원망과 절망의 공간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평안을 누리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에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용서의 복음을 전하며 실천하라고 우리를 보내십니다. 용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십시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랑하며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용서와 화해의 삶을 누리며 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목 | 성경말씀 | 설교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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